[한마당-김찬희] 청담동

입력 2012-12-23 20:17
면적 2.33㎢에 3만834명(2008년 기준)이 사는 이곳은 예전에 ‘청숫골’로 불렸다. 맑은 못이 많아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 영동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면서 한강에서 잡은 게 쏘가리 붕어 등을 강북으로 내다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이 시작되자 사람과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논과 밭이던 곳에 도로가 생기고, 높은 빌딩이 들어섰다. 명품거리, 고급 주택가와 고급 아파트를 품게 됐다. 서울 청담동 얘기다. 청담동 명품거리는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문화의 거리로 불린다. 몇 년 전부터 재벌가에서는 앞다퉈 청담동의 부동산을 사들이고 있다.

부의 상징이자 동경의 대상인 청담동을 앞세운 ‘청담동 앨리스’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부자들의 세상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네 빵집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여주인공은 돈이 없어 외국유학 한번 못 갔다. 그래도 ‘노력이 나를 만든다’는 격언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세상은 땀방울 따위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춥다. ‘이상한 나라’인 청담동으로 데려다줄 ‘시계토끼’를 찾는 앨리스를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닌 재산이 곧 계급이 되고, 그 계급이 세습되는 사회에서 시계토끼가 아니면 평범한 서민은 청담동으로 갈 수 없다. 계층과 계급을 오르내릴 수 있는 사다리는 사라지고, 교육의 기회조차 부에 따라 달리 주어진다.

그래서일까. 한창 거창한 미래를 꿈꿔야 할 아이들이 일찌감치 세상을 맛본다. 중학생 몇 명에게 물어봤다. 장래희망이 뭐냐고. 돌아온 대답은 “없어요” 또는 “그냥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다시 물었다.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냐고. 일자리가 많아 취업 걱정 없는 사회를 얘기했다.

화려하게 치장한 청담동은 우리가 안고 있는 비극의 맨 얼굴이기도 하다. 서민은 감당하기조차 버거운 사교육비, 탈출구 없는 청년실업, 무너지는 중산층이 빚어낸 우울한 자화상이다. 15∼29세의 청년 10명 중 3명만 일자리를 갖고 경제활동을 하는 게 현실이다. 미국·덴마크의 청년 고용률 60%는 물론 일본·독일의 40%보다 크게 낮다.

5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새 대통령은 더 많은 앨리스가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아이들과 청년들의 손에 ‘희망’, 그리고 일자리를 꼭 쥐어주어야 한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