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잘 살아 보세’

입력 2012-12-21 19:08

#“지난 세기 70년대의 나날 장군님(김정일)께서는 우리 인민을 만리마(萬里馬)에 태워 기적적 승리를 이룩하셨다. 어버이수령님(김일성)께서 천리마(千里馬) 시대를 열었다면 김정일 동지는 속도전 시대를 열어놓았다.” 올해 1월 30일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내용이다. 김정일을 찬양하기 위해 ‘만리마’라는 단어까지 사용한 점이 눈길을 끈다. 천리마운동은 소련의 경제원조 삭감 등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김일성이 노동경쟁을 통해 생산증대를 꾀하기 위해 1958년 시작했다. 사상개조운동으로 이어진 이 운동으로 북한은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다.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은 1971년 ‘근면·자조·협동’의 기치 아래 본격화됐다. 권위주의 시절이었던 만큼 전 행정조직이 동원됐고, 주민들도 대거 참여해 ‘농촌의 사회적 혁명’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과를 거뒀다. 농촌지역이 어느 정도 개발되자 도시녹화, 소비절약 등 비농촌지역으로 확대됐다. 1980년에는 새마을중앙운동본부가 세워져 관(官)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친동생인 전경환씨가 이 운동에 가담한 뒤 비리가 터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혹자는 천리마운동에 맞서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새마을운동을 폄하하는 견해다. 새마을운동은 근대화를 이룩하는 데 정신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반면 유신체제를 지속시키려 추진된 것이라는 해석도 여전하다. 새마을운동이 비상사태가 선포된 해에 점화됐고, 1972년 유신헌법이 통과된 점 등은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새마을운동은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논란은 수면 밑에서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일을 하루 남겨둔 날 “다시 한 번 ‘잘 살아 보세’의 신화를 이루겠다”며 지지를 호소한 데 이어 첫 회견에서도 같은 말을 했다. ‘잘 살아 보세’는 새마을운동과 동의어다. 새마을운동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이룩하겠다는 박 당선인의 의지는 이해가 되나, 수십년 전에 유행했던 ‘잘 살아 보세’란 표현은 바꿨으면 좋겠다. 한마음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상황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