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25) 의논] 가치관 대결 이젠 그만

입력 2012-12-21 18:23


‘난중일기’에는 이순신이 수시로 다양한 사람들과 토론하고 회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나온다. 그럴 때 그가 자주 쓴 표현들을 원문 ‘난중일기’에서 찾아보면 ‘의(議)’ ‘론(論)’ ‘화(話)’ ‘담(談)’이다.

“경상 우수사와 전라 우수사를 불러 의논(議)하여 계획을 세웠다(1594년 5월 8일).” “군사의 계책을 자세히 의논했다(論)(1593년 6월 10일).” “경상 우수사와 서로 배를 매고 이야기했다(話)(1592년 8월 25일).” “군사 일을 이야기했다(談)(1593년 6월 18일).”

그 각각의 한자 본래 의미를 살펴보면 의(議)는 ‘의논하여 올바르게 결정한다’는 뜻으로 과정을 중시한다. 론(論)은 ‘상대방과 논리를 세워서 의논하는 일’로 도덕적 가치판단이 강하게 개입된 결론 내기에 가깝다. 화(話)는 ‘여러 사람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담(談)은 ‘두 사람이 화톳불 앞에서 정겹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의(議)는 회의, 론(論)은 토론과 같다.

리더들의 회의와 토론 모습을 살펴보면 리더의 개성에 따라 그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패튼 장군은 자신이 주도하는 브리핑 형태의 회의, 맥아더는 즉흥 토론을 많이 활용했다. 나폴레옹은 목적과 형식, 규모가 다양한 회의를 자주 열었다. 영국 해군의 영웅 넬슨은 식사 자리를 이용해 토론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순신의 회의와 토론은 다른 외국의 명장들보다 더 다양하다. 그는 때와 장소, 형식, 규모에 관계없었다. 식사를 할 때도, 술을 마실 때도 했다. 육지에서는 경청의 공간이었던 운주당은 물론 활쏘기 시합을 하는 활터에서도 했다. 바다에서는 부하 장수와 배를 맞대고 회의를 할 정도였다.

그가 했던 다양한 형식의 회의와 토론은 그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얼마나 소중하게 들으려 했는지, 또 군사와 백성들을 한마음(一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그는 감정 대결, 가치관 대결을 가져올 수 있는 ‘론(論)’은 상대적으로 많이 하지 않았다.

역사학자 정두희 교수는 조선 사대부들, 곧 유학자 선비들이 ‘의’보다는 ‘론’에 익숙했기에 당쟁이 격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할 정도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쓸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제는 모두 함께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던 온갖 갈등을 일으키는 ‘론’ 대신 ‘의’와 ‘화’와 ‘담’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다.

박종평 (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