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다이어리의 역습] 종이 위에 쓱쓱 연필로 꾹꾹… ‘꿈’을 눌러쓰다

입력 2012-12-21 18:19


스마트폰 무릎 꿇린 ‘손맛’

“속지가 중요하니까 잘 골라봐.” “아니야, 디자인이 좋아야지∼.”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안의 문구점 핫트랙스 다이어리 코너. 다이어리를 놓고 모녀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엄마는 다이어리 속지(내지)의 실용적 측면을, 딸은 다이어리의 디자인을 강조하며 옥신각신했다. 이들은 판매대에 전시된 거의 모든 다이어리를 꼼꼼히 비교하더니 서너 권을 구입했다.

이곳 다이어리 판매대는 총 세 곳. 사무용 다이어리와 디자인 다이어리, 프리미엄 다이어리로 구분돼 있다. 사람들은 사무용 다이어리와 디자인 다이어리에 많이 몰려 있었다. 판매대에는 한눈에 봐도 수백종을 헤아릴 정도로 예쁘고 아담한 크기의 다이어리가 많았다. 이름만 사무용이지 딱딱한 느낌도 벗었고 내지 디자인이나 부록 내용도 다채로워 스트레칭이나 지압법, 커피정보, 국가별 의복사이즈까지 실려 있었다.

김영환(36·회사원)씨는 “요즘 다이어리는 디자인과 종류가 다양해졌다”며 “회사 업무뿐 아니라 개인적인 일기나 감상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미애(29·교사)씨도 “그동안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했는데 다이어리는 종이가 제 맛”이라며 “예쁘고 실용적인 다이어리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다이어리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각종 스마트 기기의 플래너나 메모 기능 앱이 강세를 누리고 있지만 유독 종이 다이어리를 찾는 사람들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판매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대표적 다이어리 제조업체인 양지사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수첩·다이어리 매출은 13억5800만원으로 지난해(12억9900만원)보다 증가했다. 교보문고 핫트랙스도 다이어리 판매가 지난해보다 15% 늘었다. 현재 판매되는 다이어리는 2000여종. 지난해 1400종보다 무려 40%가 늘었다.

이른바 명품을 표방하는 프리미엄 다이어리도 마찬가지다. 2004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이탈리아제 ‘몰스킨’은 해마다 두 배의 성장을 기록하며 올해 매출은 70억원을 바라보고 있다. 94년 국내에 들어온 ‘프랭클린 플래너’도 매년 사용자 90%가 재구매할 정도로 꾸준한 인기다.

프리미엄 다이어리는 종이 재질과 고급스러운 커버, 실용성을 장점으로 사용자의 손맛을 극대화하고 보존성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속지의 가격대는 1만7000∼3만5000원, 커버는 3만∼25만원까지 다양하다. 브랜드만 30개가 넘지만 가격 영향은 크게 받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아날로그 다이어리의 강세 비결은 종이가 갖는 감성적인 측면과 편리함이다. 프랭클린 플래너 관계자는 “펜과 종이가 주는 감성, 필기의 자유로움은 디지털 기기와 비교할 수 없다”며 “종이 다이어리는 사용자가 직접 기록하고 관리하기 때문에 목표를 이루는 힘도 얻게 된다”고 말했다.

포털 사이트 블로그엔 종이 다이어리 사용기가 눈에 띈다. 아이디 ‘gg**’는 “스마트폰 메모 앱을 신속하고 편리하게 사용했지만 무엇인가 허전했다”며 “종이 다이어리에는 디지털이 갖지 못한 인간적인 면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 ‘쇼퍼**’도 “빈티지 다이어리가 맘에 든다. 스마트폰 앱을 썼더니 시력이 떨어져서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하소연했다.

아날로그 다이어리의 인기는 손글씨나 필기구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회원 1만333명을 보유한 인터넷 카페 ‘문방삼우’는 만년필과 종이, 잉크류를 소개하고 있다. 카페에는 회원들이 직접 기록한 필체와 종이의 장점, 각종 노트와 다이어리 사용기 등이 올라와 있다. 인터넷 카페 ‘연필의 클래식’은 다양한 연필을 소개하고 글씨체 등을 올리며 아날로그적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다이어리 업계 관계자는 “다이어리는 스마트 기기 앱과 종이 다이어리를 사용하는 사람들로 양분돼 있다”며 “종이 다이어리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아날로그적 취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