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그만큼이면 충분해요”

입력 2012-12-21 18:26

기독교인에겐 언제나 베푸는 삶이 요구됩니다만 연말에는 부쩍 더 부담이 되시죠? 신앙 없는 사람들조차 주머니를 털어 자선냄비에, 봉사단체에 돈과 선물을 기부하는 마당이니까요. 올해는 유난히 어렵고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셨을 텐데 ‘기부의 계절’을 맞아 마음이 무거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내가 해야 하는 한껏인지, 하나님은 내가 얼마만큼 하길 원하실지.

삭개오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늘 궁금했답니다. 도대체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걸까.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기에 그리 신나서 집으로 모셨을까. 난데없는 선언은 또 무엇이었을까. “주님, 제가 혹시 남에게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습니다. 그리고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 쓰겠습니다!” 많은 장면이 생략된 이 긴박한 스토리의 백미는 삭개오의 선언을 들은 예수님의 응답이었죠. “소테리아!구원이 오늘 이 집에 이르렀다.” 참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소유를 기쁘게 나누겠다는 삭개오의 선언에 구원을 선포하셨으니까요.

그날 삭개오가 들은 예수의 메시지는 희년(禧年)에 관한 것이었을 거라고, 전 그리 생각해요.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의 핵심 내용이었으니까요. 나눔이 개인적 선심이나 율법적 책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삭개오는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을 바꾼 것이라고 믿어요. 그렇다고 소유의 반이나? 나누는 양은 핵심이 아니지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발성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는 기쁨이 아닐까요. 얼마만큼을 나누든 이제 막 그 질서대로 살고자 기쁨으로 나누는 우리를 보신다면 주께서는 “충분해요” 그리 말씀하실 거라 믿습니다. 충분한 나눔의 양은 자기 의에 가득 찬 신자의 오만함도 신자의 부담스런 책무도 아닌, 기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싶습니다.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