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 개막] 역대 정권 인수위 구성 어땠나… 실세들의 집합소, 점령군 행세 잡음

입력 2012-12-20 19:13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당선증을 받는 순간부터 ‘정치’가 아닌 ‘정책’을 시작하게 됐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사실상 작은 정부다. 60여일이라는 시간 안에 차기 정부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의 인수위 구성을 보면 정책보다는 정치였다. 인수위는 정권 실세들의 집합소였고, 점령군처럼 행동했다.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2월 25일 이전부터 사실상의 정부로 행동했다.

인수위는 1992년 12월 김영삼(YS)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처음 등장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설치령’이라는 명칭의 대통령령이 제정됐고 YS 인수위는 철저하게 현역 의원을 중용했다. 위원장이었던 정원식 전 총리와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제외하고는 100% 현역 의원이었다. 대선 당시 극에 달했던 지역감정을 완화하기 위해 인수위원 15명은 철저하게 지역적으로 안배됐다.

1997년 김대중(DJ) 대통령 인수위에는 선거승리 요인인 ‘DJP 연합’ 정신에 따라 김종필(JP) 전 총리 인맥이 대거 합류했다. 김현욱 이동복(통일외교안보) 이건개(정무) 조부영(경제) 전 의원 등이 JP 측 인사였다. 하지만 실세는 박지원 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였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는 ‘민주당 인사 배제’ 원칙에 따라 ‘4050세대’ 소장파 대학 교수를 대거 중용했다. 또 인수위 회의를 TV로 전국에 생중계하기도 했다. 대통령령에 묶여 있던 인수위 설치를 법으로 처음 만들고 백서를 남긴 것도 최초였다.

2007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14부4처18청이었던 정부를 13부2처17청으로 개편했다. 위원장에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임명하고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 및 곽승준 고려대 교수 등을 중용해 취임 전부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논란을 낳았다.

지난주 출간된 ‘대통령의 성공, 취임 전에 결정된다’의 저자 이경은씨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11월 선거 훨씬 이전인 봄부터 ‘오바마-바이든 트랜지션(Transition·인계) 팀’을 만들어 선거 캠페인과 별도로 정책 인수인계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3년 인수위 사회여성 분과에서 일했고 미국 워싱턴 헨리스팀슨센터 연구원으로 체류하며 오바마 행정부 인수위를 연구했다. 이씨는 “당선인이 직접 책임지고 자신의 정부 틀을 설계하는 문화가 한국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