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 개막] 전면적 재벌개혁 대신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에 초점
입력 2012-12-20 21:38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정책은 성장과 경제민주화의 균형으로 요약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한 상황에서 우선 당장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장을 도외시한 과도한 경제민주화는 기업들의 투자를 위축시켜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창조경제론’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 중심 성장정책을 펴 일자리를 늘리고, 전면적인 재벌개혁 대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불공정행위를 철저히 감독하는 온건한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기술에 기반한 창조경제론으로 일자리 창출=박 당선인은 대선 유세기간 동안 “상상력과 창의성, 과학기술에 기반한 창조경제론으로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언했다. 창조경제론은 첫 이공계 출신 대통령인 박 당선인의 생각을 집약한 개념이다. 대기업 중심 수출 위주 정책을 폈던 현 정부의 실패를 교훈삼아 저성장 시대에 신성장 동력 확보가 절실한 우리 경제를 과학기술로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 산업 등 정보통신기술과 서비스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스마트 뉴딜’ 정책으로 일자리를 늘린다는 구상이다. 목표는 임기 5년간 일자리 150만개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3%였던 국가 총 연구개발비도 2017년 5%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과학기술과 경제성장을 접목할 부처로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내놨다. 다만 핵심정책인 창조경제론의 개념이 여전히 총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벤처기업 투자 활성화 공약은 과거 국민의 정부 시절 벤처기업 육성방안과 차별화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일자리 정책의 다른 축은 ‘늘지오’로 요약되는 고용안정대책이다. 늘지오는 좋은 일자리는 많이 늘리고, 지금 있는 일자리는 지키고,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이다. 현재 60% 수준인 15∼64세 고용률을 유럽연합(EU) 목표치인 70%로 올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2015년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진행된다. 고령화시대 중장년층의 일자리 대책으로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공약도 추진된다.
◇경제민주화, 재벌개혁보다 불공정행위 차단에 무게=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는 재벌 자체를 겨냥하기보다는 시장의 불공정행위를 바로잡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문제가 아니라 남용이 문제”라는 것이 박 당선인의 지론이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재벌의 순기능은 최대한 인정하겠다는 의미다. 낙선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재벌이 자산의 일정 범위 이상을 다른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등 재벌을 정면으로 겨냥했었다. 이 때문에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시장지배력은 그대로 둔 채 일부 제도만 바꾸는 데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박 당선인의 경제민주화는 출총제 부활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재벌 자체보다는 시장개혁을 중시한다. 인위적인 재벌개혁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총수일가가 일부 지분만으로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순환출자 역시 기존에 시행된 순환출자는 허용하되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 분산돼 있는 대기업 관련 규제를 종합한 ‘대기업집단법’도 대선 막판에 공약에서 빠졌다.
하지만 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대기업들의 불공정행위는 엄단할 방침이다. 대표적인 것이 ‘징벌적 손배해상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불공정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피해액수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억제하기 위한 사전예고제, 소액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방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던 관행도 줄어든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을 개정해 총수일가가 횡령·배임죄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관행을 막기 위해 형량을 높일 방침이다.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기업인에게 유독 집중됐던 대통령 사면권도 제한하기로 했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