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에 남발되는 희망의 내면 성찰… 김승희 신작 시집 ‘희망이 외롭다’
입력 2012-12-20 18:28
김승희(60) 시인은 나이를 모른다. 육십인데 이토록 시가 젊을 수 있다니. 시가 나이를 깨뜨리고 시대를 깨뜨린다. 마치 꽁꽁 얼어붙은 빙하를 우지끈 깨뜨리고 나아가는 ‘쇄빙선’ 같다. 쇄빙선은 먼저 ‘나’를 깨버린다.
“쇄빙의 아침이다/ 오늘 하루도 얼음장을 깨고 쇄빙의 시간 속으로 나간다/ 갈비뼈 있는 데서 피가 흐른다/ 쇄빙의 칼날 밑에 오늘도 네 사람의 학생과/ 한 사람의 교수가 자살했다/ 면류관 같은 얼음칼이 쇄골에 쿡쿡 박힌다”(‘서울의 우울 3’ 부분)
쇄빙은 그가 우리 시대를 꽁꽁 얼어붙은 언어의 빙하기로 보고 있다는 방증의 단어이기도 하다. 두꺼운 빙하를 깨고 천천히 나아가는 쇄빙선의 옆구리에 얼마나 깊은 상처가 새겨지는가. 그렇지만 그의 쇄빙의 시학은 빙하를 뚫고 나아가면서도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강물이 풀리면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 어느 대선 후보가 ‘사람이 희망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건 정치구호는 될 수 있을지언정 영혼의 구호는 되지 못한다.
우리 시대에 과연 희망은 무엇인가.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서강대 국문학 교수인 김승희의 아홉 번째 시집 ‘희망이 외롭다’(문학동네)는 우리가 그토록 즐겨 쓰는 단어인 ‘희망’의 심층을 열어젖힌다. 예컨대 인간에게 희망은 얼마만큼 관습적이다.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절망을 극복할 방책으로 ‘희망’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어떤 의미에서 학습된 천성에 가깝다.
김승희는 이러한 관습을 뒤집는다. “남들은 절망이 외롭다고 말하지만/ 나는 희망이 더 외로운 것 같아./ 절망은 중력의 평안이라고 할까./ 돼지가 삼겹살이 될 때까지/ 힘을 다 빼고, 그냥 피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으면 되는 걸 뭐…/ 그래도 머리는 연분홍으로 웃고 있잖아, 절망엔/ 그런 비애의 따스함이 있네”(‘희망이 외롭다 1’ 부분)
김승희는 희망을 깨뜨려버린다. 이는 한국문학에서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희망을 너무나 남발했는지도 모른다. 김승희에 따르면 인간은 희망에 대해 알고 있기에 희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희망이 외롭다 1’의 다음 연은 이어진다.
“희망이란 말이 세계의 폐허가 완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왜 폐허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느냐고/ 가슴을 두드리기도 하면서/ 오히려 그 희망 때문에/ 무섭도록 더 외로운 순간들이 있다// (중략)// 희망과 나,/ 희망은 종신형이다/ 희망은 외롭다”
희망은 전지전능으로 우리 곁에 자리 했다. 누군가 병이 깊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바싹 붙어 앉아 ‘희망을 가지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이라니. 우리는 희망 병에 걸린 환자인 것이다. 그토록 희망은 쉬운 것인가. 차라리 “피가 철철 흐르도록 아직, 더 벅차게 사랑하라는 명령”(‘희망이 외롭다 1’)인 절망에 몸을 묶을 지니,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고치는 것보다 허물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오늘에// 내일의 빵이 모든 희망의 할머니였다고 쓴다.// 서울이여, 서울에서/ 희망도 스펙이라고 쓴다. 지우고/ 희망은 오늘/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외설이 되었다고 쓴다”(‘서울의 우울 17’ 부분)
김승희는 우리 시대에 남발되고 있는 희망의 내면을 성찰하고 있다. 우리는 희망 속에 참혹한 절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김승희가 말하는 희망이란 절망에 몸을 묶은 역설의 시학인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