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기원 관련한 밀러의 실험, 가정과 상상에 근거” 교진추 개정 청원
입력 2012-12-20 12:13
생명의 기원에 관한 최초의 실험으로 알려진 ‘밀러의 실험’을 수록한 국내 교과서는 잘못됐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청원서가 제출됐다.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회장 이광원)는 지난 18일 2011년도 고등학교용 ‘과학’ 교과서 개정에 대한 청원서를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감 권한대행 이대영)에게 제출했다고 20일 밝혔다.
‘화학적 진화는 생명의 탄생과는 관련이 없다-밀러 실험과 종합반응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청원서에는 전·현직 대학교수(대표 김성현) 85명, 중등과학교사(대표 서현석) 67명, 초등교사(대표 이세형) 23명 등 과학 관련 교육자 175명의 의견을 담았다.
이들은 현재 과학 교과서에 수록된 ‘생명의 탄생’에 관한 화학적 진화의 기술내용은 가정과 상상에 근거한 것이며 오늘날의 학술적 연구내용과 상충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화학적 진화설을 삭제해야 하며, 만일 삭제가 어려우면 ‘화학적 진화설은 실험적 근거가 매우 빈약하며, 특히 밀러의 실험은 생명의 탄생과는 관련이 없다’는 내용으로 개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학자들은 ‘밀러의 실험’의 문제점으로 △오파린의 화학적 진화설은 생명탄생에 관한 일종의 자연발생설로 이미 실험적으로 입증된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과 상충 △원시 대기 성분이 강 환원성이라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 제시된 것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유기물로부터 생명체의 합성이론을 펼치기 위해 설정한 가설 △최근 많은 연구에 의하면 원시 대기는 일정 수준의 산소를 함유한 산화형 대기 △산소가 존재하는 환경에서는 합성이 아니라 산화와 같은 분해 작용 발생 △밀러의 실험은 자연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매우 정교하게 제어된 조건 아래 수행된 화학반응으로 자연계에서의 생명의 탄생과는 관련이 없다 △밀러의 실험에서 합성한 아미노산과 오탄당은 모두 라세미 혼합물, 라세미 혼합물은 생체 고분자(단백질·핵산)의 구성성분이 될 수 없으므로 밀러의 실험은 생명의 탄생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중합에 의한 고분자의 합성은 자연계에서는 그 가능성이 너무 낮기 때문에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없다 등을 지적하고 있다.
교진추는 한국과학창의재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도 이 같은 내용의 청원서를 보냈다. 또 내년 2월말 서울역 강의실에서 밀러의 실험을 비롯한 ‘진화론, 교과서, 세계관’을 주제로 포럼을 연다.
교진추는 지구 최초의 새로 알려진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종이 아니다’라는 청원서를 지난 해 12월 제출해 7개 교과서 중 6개 출판사에게 전면 삭제 및 수정, 검토 답변을 1월 초 얻어냈다. 또 ‘말의 진화 계열 교과서 내용 틀렸다’라는 청원서를 지난 4월 제출해 3개 출판사에서 수정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교진추는 앞으로 ‘후추나방이 밝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한 것’에 대해 청원할 예정이다. 이외에 ‘인류의 진화’ ‘핀치 새가 섭식습성에 따라 부리모양이 달라지는 것’ 등 진화론의 잘못에 대해서도 청원할 계획이다.
밀러의 실험은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고전적인 실험으로, 초기 지구의 가상적인 환경을 실험실에서 만들어 그 조건에서 화학적 진화가 일어나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실험이다.
국내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실험으로 유명한 밀러(1930∼2007년)는 실험을 통해 원시대기에 존재하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간단한 물질에서 아미노산이 생기고 DNA, RNA 등 핵산 성분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다”(상상아카데미 pp148∼151)고 수록돼 있다. 그러나 최근 생물학계에서는 파스퇴르의 생물속생설이 실험적으로 입증되면서 ‘밀러의 실험이 생명의 기원이나 진화론의 증거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