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들 “한국 첫 여성대통령 나왔다” 신속 보도

입력 2012-12-20 02:54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9일 저녁 개표 초반부터 여유있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따돌리는 동안 미국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 주요언론들의 반응은 온도차를 보였다.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이 이날 낮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브리핑을 통해 한·중 양국간 협력을 강조하고 나서 관심을 끌었다. 반면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총선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공식 반응이 없었다.

미국의 경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유력 신문은 박 당선인의 승리확실 상황이 전해졌음에도 이날 밤 늦게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투표상황만 간략히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CNN 방송 등이 당선 소식과 한국인들의 표심 분석에 충실할 뿐이었다.

중국 정부는 “(새 대통령이 탄생하는) 한국과 우의를 증진하고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한층 발전시켜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화춘잉(華春瑩) 대변인은 이날 낮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의 새 대통령에게 중국이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중국은 현재의 양호한 기초 위에서 한국과 상호 협력을 강화해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 언론은 한국 대선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도 논평보다는 사실 보도에 충실했다. CCTV는 75%가 넘는 높은 투표율이 이번 선거를 둘러싼 한국 국민의 관심도를 나타낸다고 전했다. CCTV는 특히 이번 대선을 “공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이 정면 대결을 벌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박 당선인의 승리가 확실시된다는 뉴스를 인터넷 홈페이지의 톱뉴스로 전하면서 박 당선인에 투표하는 사진을 내걸었다. 제목은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었다. 박 당선인의 사진 10여장과 함께 인물소개도 곁들여 박 당선인이 한국인들로부터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단성 있는 리더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인민일보는 한국의 개표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면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총선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맛본 노다 요시히코 정부의 ‘무반응’ 속에 일본 언론들은 대선 개표 상황을 실시간 속보로 전하며 관심을 보였다. 지지통신은 ‘비극의 딸(悲劇の娘)’이 대통령에 선출됐다면서 “약속을 중시하는 원칙주의자이지만 유연성과 친화력이 부족하다”고 소개했다. 열렬한 지지자가 많은 반면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세력의 반발이 심한 만큼 박 당선인이 ‘국민대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출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도했던 교도통신도 한국 방송사들이 박 당선인의 당선 확실을 공표하자 이를 긴급 속보로 전했다. 교도는 외무성 간부를 인용, 한·일 양국에서의 새 정권 탄생을 한·일관계 경색을 풀 수 있는 계기로 보고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NHK는 일본 정부가 박 당선인의 대북 정책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역사 문제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줄지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뉴스채널 CNN은 한국 유권자들이 ‘로켓’보다 ‘포켓’을 더 걱정했다고 묘사했다. 1주일 전 벌어진 북한의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 사건이 한국의 대선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고, 미국의 대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일자리와 세금 같은 호주머니 사정에 관한 문제가 주된 이슈였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 통신사 AP는 ‘매우 보수적인 나라가 첫 여성 지도자를 맞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AP는 박 당선인이 첫 여성지도자로 역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서도 그가 아버지의 그늘에 있다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전했다. 박 당선인의 승리는 한국 유권자들이 아버지의 강한 카리스마를 불러일으키고 한국의 경제와 안보 이슈에서 안정을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며 논평을 주저하면서도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한국 대선 당선인의 입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스탠퍼드대 한국학 연구소 부소장은 “미국 정부 입장에서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이 문 후보보다는 현 정부와 연속성이 있다고 볼 것은 확실하다”면서 “미국 정부 내에서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지만 한국 새 정부의 북한에 대한 시각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관영 BBC방송은 한국 대선을 과거 군사 정권의 퍼스트레이디와 이에 저항하다 수감된 대학생의 대결이라고 전하면서도 “실제 정책에서는 두 후보의 차이가 크지 않고 둘 다 복지 확대와 경제 민주화를 약속했다”고 평가했다.

로이터 통신은 박 당선인이 1974년 암살된 어머니 대신 ‘아버지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청와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남성 지배적인 국가에서 박 당선인이 첫 여성 대통령으로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당선인의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독재자로 18년간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억제하고 권위적 통치를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국가적 빈곤을 끊어낸 업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존경받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통신사 AFP는 박 당선인이 내년 2월 청와대에 들어가자마자 호전적인 북한, 꺼져가는 경제와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 속도가 빠른 사회에서 치솟고 있는 복지비용 등 여러 가지 도전에 맞닥뜨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김지방 구성찬 박유리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