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첫 여성 대통령, 국민 통합이 시험대

입력 2012-12-20 02:49

소통의 리더십 보이고 親朴의 벽에 갇히지 말아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과반을 득표한 대통령이다. 박 당선인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선거 막판 추격을 당했으나 선두 자리를 끝까지 지킴으로써 보수 정권의 재집권을 이뤄냈다. 문 후보의 ‘정권교체론’보다 박 당선인의 ‘국민 행복론’에 유권자들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에서 국가 최고지도자로 거듭난 박 당선인은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번 선거는 국민의 승리”라며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약속이 그대로 이행하기를 바란다.

박 당선인 앞에는 숱한 과제들이 놓여 있다. 승리에 취해 있을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최우선 과제는 국민 통합이다. 선거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을 정리하고 분열의 생채기를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패배의 쓴잔을 마신 문 후보 진영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정책이나 공약 중에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것이면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박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100% 대한민국’을 강조하며 여야 지도자 연석회의를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이의 실천에 나서는 게 급선무다. 여성 특유의 장점을 살려 선거 과정에서 증폭된 이념, 계층, 세대, 지역별 투표 성향의 차이가 국론 분열로 연결되지 않도록 진정어린 소통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대한다.

국민 통합은 옵션이 아니라 필수조건이다. 국민 통합은 국정을 이끌어가는 근본 동력이다. 이를 소홀히 하고 박빙 승부를 펼쳤던 상대를 소홀히 하면 국정 청사진을 실행에 옮기는 데 큰 장애가 된다. 당선자는 선거에서 분투했던 것 이상의 성의와 열정을 갖고 낮은 자세로 국민과 야당에 다가가야 할 것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선 탕평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정파나 이념에 구애받지 말고 국가의 동량이 될 재목을 넓게 구해서 써야 한다. 인재는 특정 진영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지연 학연 등 특정 인맥에 치우치지 않도록 인재 등용의 풀을 넓히는 것을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친박근혜계가 득세하면서 국민과의 소통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공직을 선거의 전리품처럼 취급해 마구잡이로 자기편을 심는 일은 결단코 피해야 한다.

국민 통합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다. 갈라진 목소리를 모으는 것은 분열을 그저 봉합하기 위함이 아니다. 사분오열된 국가 에너지를 응집시켜 함께 미래로 나가도록 하는 게 원래 목표다. 박 당선인은 용광로와 같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치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들에게 봉사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허리 숙여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국민의 이익을 위해 논쟁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동시에 부정부패에는 단호하고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당선인이 공약한 대통령 친인척 비위를 막기 위한 상시 특검제를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

박 당선인이 직면한 환경은 신산하다. 세계경제 위기 속에 장기 저성장이 예상되는 시점에 권력을 이양받게 된다. 이명박 정권 탄생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경제 활로 개척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경제 엔진을 어떻게 되살릴지, 실업 등 저성장의 악영향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묘안을 마련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를 더 발전시키고 질적으로 성숙시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과제도 맡아야 한다.

보수 정권이지만 약자가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경제 현실을 적절히 통제하고 분배 문제를 개선하자는 진보 진영의 주장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동시에 기업들이 세계 일류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국민 개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편법을 일소하고 공정한 사회규범을 확립해야 한다. 복지 재원은 필요한 곳에 우선적으로 배분돼야 한다. 복지 구조를 최적화해 체감도를 높이되 복지 기대치를 낮추고 자활이 가능한 생산적 복지가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도전은 북한 체제다. 장거리 미사일과 핵으로 무장하려는 북한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통일을 염두에 둔 긴 안목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 강한 억지력과 대응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김정은 체제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한반도 주변국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일본의 우경화는 엄중하게 견제하되 국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방정식을 잘 풀어야 한다. 강대해진 중국의 새 지도부와 기민한 조율의 틀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박 당선인이 이러한 난관을 뚫고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지도자로 기록될 수 있도록 집권 세력은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당도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패배에 집착해 생떼쓰기로 국정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가다듬는 성숙한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유권자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야당을 지지한 유권자들도 여유를 갖고 지켜봐야 한다. 성마른 비판으로 새 정부를 뒤흔드는 것은 모두의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