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많다

입력 2012-12-19 19:06

국가 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가 치러졌지만 참정권에 대한 일부 기업들의 무관심과 절차적 허점, 생계 문제 때문에 투표를 하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서울 신길동 한 공사현장의 일용직 노동자 최형남(51·가명)씨는 19일 새벽 5시부터 일터에 나왔다. 지난달 말 완공 예정이던 공사가 지연되면서 건설사 측에서 인부들에게 선거일에도 작업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최씨는 “집이 천안인데 선거일은 쉴 줄 알고 부재자 투표 신청도 안 했다”며 “건설사의 지시를 거부하면 당장 내일 밥을 굶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투표하러 가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국 약 200만명의 건설노동자 중 70%는 특수고용이나 임시일용 노동자다. 이들은 건설사가 공사 중단을 지시하지 않는 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서울의 모 업체 경비로 일하는 김모(62)씨는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지난 총선 때는 투표소가 문을 여는 오전 6시에 투표를 하러 갔지만 사람들이 많아 예상보다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근무교대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김씨는 “안 그래도 비정규직이라 눈치가 보여서 이번 대선에서는 아예 투표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선거 당일 투표권을 보장 않는 사업장의 사례를 취합한 결과 건설사와 병원 등에서 투표권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많은 고용주들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참정권을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움직임이 불편한 장기입원 환자들은 거소투표(거처하는 곳에서 투표)를 신청하면 되지만, 선거인명부 작성기간이 지나면 이 제도마저 활용할 수 없다. 경기도 평택 B병원에 입원 중인 정모(55·여)씨는 “올해 선거인명부 작성기간(11월 21∼25일) 이후인 지난 4일 입원해 거소투표 신청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로 소중한 투표권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장인 설모(32)씨는 “후보들의 공약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토론 방송도 열심히 챙겨 봤지만 마음에 맞는 후보가 없다”며 “투표 거부도 유권자의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4)씨는 “날씨도 춥고, 왜 투표를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 같아 투표를 안 했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양승함 교수는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으로 이것을 못하게 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라며 “특히 민주의식이 떨어지는 고용주들이 피고용인들의 투표 참여를 독려할 수 있도록 제도적 차원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