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정철훈] 감각의 분배
입력 2012-12-19 19:59
올 출판계는 두께 10㎝는 족히 넘는 이른바 ‘벽돌 책’이 유행했다. 이 벽돌 책들은 출판계의 불황을 반영하듯 선택과 집중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한 권을 내더라도 필독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특정 부류의 독자층을 대상으로 기획되었다.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도 이윤기의 장편소설 ‘하늘의 문’(1085쪽), 김윤식의 문학에세이 ‘내가 읽고 만난 일본’(807쪽),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743쪽), 이불위의 ‘여씨춘추’(815쪽) 등 그 종수는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벽돌 책에 비해 올해 주목받은 것은 100쪽 남짓한 문고판 형태의 책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와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반딧불의 잔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긍정성의 과잉에서 비롯된 병리적 상태를 의미하는 ‘피로사회’는 책 제목에서부터 두께로 승부하려는 벽돌 책의 피로감을 일찌감치 따돌릴 수 있는 감성의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듯 ‘피로사회’는 국내 출판인 180명을 대상으로 ‘제18대 대통령 당선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조사한 결과, 1위로 꼽히기도 했다. ‘이미지의 정치학’이라는 부제의 ‘반딧불의 잔존’ 역시 정치의 해, 선거의 해라는 특수를 타고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문인들이 ‘시와 정치’라는 문제를 짚어낼 때 이 책을 인용한 경우가 많았다.
위베르만의 주장은 ‘반딧불에 대한 사유’로 요약된다. 반딧불, 즉 미광은 현실 속에서 ‘부패한 권력자’를 상징하는 강한 빛과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때 강한 빛에 저항하는 반딧불 같은 존재가 대중에 비유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권력의 강한 불빛 때문에 없는 것처럼 존재하는 여린 불빛이 있다. 서치라이트처럼 강한 권력의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하는 ‘반딧불의 잔존’이 그것이다. 하지만 부패한 권력일수록 이렇게 말한다.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고. 바로 이 지점, 즉 ‘있다’와 ‘없다’라는 감각의 분배에 의해 대중은 늘 농간당해 왔다.
과거 천성산을 허물어 터널을 만들 때도, 개발 주체나 정책 결정자들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라며 밀어붙였던 것이다. 하지만 도롱뇽이 있었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 논리였다. 그곳엔 강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숱한 생명체가 있었지만 개발론자들은 ‘없다’라고 선언하면서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시멘트를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들이 ‘없다’고 선언한 바로 그곳에서 시인들은 ‘있음’을 보고 그 ‘있음’을 증언함으로써 후기 자본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문학이란 기록되지 못한 것들을 망각에서 구해내고 위정자들이 ‘없음’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을 ‘있음’을 통해 복원하는 일이기도 하다. ‘없음’의 정치는 ‘있음’의 문학과 대립한다.
올해 출간된 진은영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는 문학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세상의 절반은 삶/ 나머지는 노래// 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 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 세상의 절반은 노래/ 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진은영 ‘세상의 절반’ 부분)
여기서 방점은 ‘안 들리는 노래’에 찍힌다. ‘안 들리는 노래’ 역시 ‘노래’인 것인데 그걸 ‘들리지 않는 노래’라고 우리의 감각을 분배해 버리는 주체야말로 노회한 권력과 부패한 정치인인 것이다.
제18대 대선 과정에서 상당수의 문인, 예술인들이 대선 주자의 멘토가 되어 직간접적으로 선거를 도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권력이 ‘없다’라고 선언하는 여러 정치적 국면에서조차 ‘있는 건 있는 것이다’라고 직언할 수 있는 감각의 분배를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머지않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구성될 테지만 그들이 수권에 대비한 참모 역할을 할 때 늘 마음에 새겨둬야 하는 잣대가 있다면 ‘감각의 분배’가 아닐까. 차기 정권 역시 ‘감각의 분배’를 얼마나 균형 있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