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황당한 終末論

입력 2012-12-19 19:58

사건기자였던 1992년 10월 28일 서울 성산동 다미선교회 본부로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종말론을 주장한 다미선교회 본부가 자칭 ‘마지막 예배’를 보는 곳이었다. 많은 취재진과 구경꾼들이 건물 밖에서 진을 치고 대기했다. 하지만 예수가 재림할 때 구원 받은 사람이 하늘로 올라간다는 휴거(携擧)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미선교회의 사기극은 어이없게 막을 내렸다. 이후 다미선교회 출신 중에는 종말론이 허구였음을 반성하고 회심(回心)한 이들도 있지만 곧 휴거가 일어난다고 아직까지 믿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당시 50여개 사이비 종파가 퍼뜨린 시한부 종말론을 전국에서 2만여명이 추종한 것으로 종교학계는 추정했다.

종말을 다룬 영화도 많이 나왔다. 올해를 지구 종말의 해로 묘사한 할리우드 영화 ‘2012’,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 위기를 그린 ‘딥 임팩트’ ‘아마겟돈’ ‘세계가 충돌할 때’ ‘지구의 대참사’, 핵전쟁을 다룬 ‘그날이 오면’ ‘그날 이후’ 등이 있다.

연말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서 종말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고대 마야 달력이 오는 21일까지 기록된 것을 계기로 제기된 ‘12월 21일 종말론’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남부 뷔가라슈 마을은 난데없이 구원의 땅으로 소문이 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구가 고작 179명인 이 마을 자치회장이 민박이 예약된 사람을 제외한 외지인의 출입을 막겠다고 ‘비상사태’까지 선포한 상태다.

중국 당국은 종말론으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사교단체 ‘전능신(全能神)’ 관계자 수백명을 검거했다. 미국 초등학교 총기 난사범의 어머니 낸시 랜자도 종말론자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낸시는 종말에 대비해 식량 비축과 총기 구매에 열을 올렸고 사격술과 같은 생존법을 배웠다고 한다.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의 유튜브 조회수가 10억명을 돌파하는 날, 종말이 온다고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는 괴소문까지 돌고 있다. 지하에 묻도록 설계된 파이프 모양의 거주설비가 ‘종말 피신처’로 미국에서 고가에 팔리고 있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세상을 현혹시키는 종말론자들과 추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성경 구절이 있다.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마가복음 13장 32·33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때는 아무도 모르니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길 때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