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영진 (2) 神의 영역 ‘뇌’ 다루는 신경외과에 도전한 까닭은?
입력 2012-12-19 18:03
2002년 가을 무렵이었다. 진료예약 명부에서 기억이 선명한 이름을 발견했다. 9번의 수술 끝에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그 영아였다. ‘아니, 별일 없었던 건가. 벌써 오래전에 검진을 받으러 왔어야 했는데….’
영아기에 단락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 몸이 성장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한동안 검진을 받으러 오지 않았다. 문제가 있었다면 수시로 병원을 찾았을 터였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진료실에 들어서는 아이의 모습은 보기에도 건강해 보였다. 정맥에 넣었던 관은 끊어져 있었다. 꽤 오래 된 듯 보였다.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료됐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의사로서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일반 수련의 시절 전공분야를 정하지 못해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소아과 병동에서 실습하기도 하고, 국립정신병원에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응급실을 지키고 있는데 새벽 2시쯤 의식을 잃은 환자가 갑자기 들어왔다. 급하게 레지던트 1년차 선배에게 위급한 환자가 왔다고 연락을 했다. 잠시 후 그 선배가 응급실에 들어와선 환자의 의식 상태를 살폈다. 선배는 환자의 기관을 절개했다. 순간 피가 솟구쳤다. 환자의 호흡이 돌아왔다.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래, 이게 의사야.’ 마음이 요동쳤다. 뒤늦게 의학도가 된 나로선 상대적으로 편한 전공을 택해야 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생명의 끈을 붙잡아 살리는 외과에 ‘꽂히고’ 말았다. 열심히 공부했고 수련의 중에 1, 2등만 지원할 수 있는 신경외과에 지원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신경외과 의사들이 흔히 접하는 수술은 뇌동맥류, 이른바 ‘꽈리 수술’이다. 뇌동맥의 일부가 꽈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병이다. 혈관 벽이 얇아진 부위에 혈류가 계속 부딪히면서 생긴다. 부풀어 오른 부위가 터지지 않는다면 별 이상 없이 지낼 수 있지만 대체로 터지게 되고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발병자의 30%는 사망하고, 30%는 혼수상태에 빠진다. 다행히 병원에 도착해 수술을 받더라도 중증 장애를 갖게 된다. 수술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일주일 뒤 혼수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의술의 발달로 요즘엔 개두 수술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예후가 좋지 않아 늘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는 곤혹스러운 질병이다.
뇌동맥류 수술뿐 아니라 다른 모든 수술에서 신경외과 의사는 고도의 집중력과 정확한 판단력, 빠른 결단력을 가져야 한다. 다른 부분과 달리 뇌를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 성공할 수는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잘 알지 못하는 뇌의 어떤 부분에 생긴 종양을 잘못 제거했을 때 나타나는 후유증은 예상할 수 없다.
신경외과 의사로 생명과 신체 각 부분에 명령을 내리는 뇌를 담당한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겪는다.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해도 24시간 동안 물 한 모금 입에 못 대고 정성으로 수술을 해도 환자가 잘못 되면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심한 자책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 실력과 능력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느끼게 됐다. 다 안다고 여기면서 수술대에 서지만, 내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면서 미세현미경을 들여다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늘 기도하게 된다. 또 환자와 보호자에게 당부한다.
“생명을 관장하는 절대자의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도하십시오.”
정리=전재우 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