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數’ 유재학 꾀주머니 차고 농구판 주무르더니 ‘400승’… 프로 감독 통산 첫 대기록
입력 2012-12-18 22:27
한국 최고의 가드였다. 그러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실업팀 기아자동차에서 딱 세 시즌만 뛴 뒤 스물여덟의 나이에 코트를 떠났다. 경기당 어시스트 7.14개라는 대기록을 남긴 채. 선수로서 불운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울산 모비스의 ‘만수(萬數)’ 유재학(49) 감독. 그가 마침내 한국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 400승 고지에 올랐다. 경기장엔 400승을 기념하는 명곡 ‘마이웨이’가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모비스는 18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열린 2012∼2013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정규리그 고양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65대 49로 역전승을 거뒀다. 유 감독은 이날 승리로 전·현직 프로농구 사령탑을 통틀어 처음으로 개인 통산 정규리그 400승(350패)을 기록했다.
유 감독은 1989년 말 모교인 연세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엔 프로 출범과 함께 대우증권(현 전자랜드) 초대 코치를 맡았다. 1998∼1999 시즌엔 역대 최연소인 35세 나이로 인천 대우(현 전자랜드) 지휘봉을 잡아 프로 사령탑에 올랐다. 2004년 모비스로 거처를 옮긴 유 감독은 네 차례나 팀을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놓았다. 이 중 두 차례는 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을 달성해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코치와 감독으로 프로농구와 역사를 같이 해 오고 있는 유 감독은 각종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11월 만 46세 나이로 정규리그 300승을 달성해 최연소 300승 감독이 됐고, 지난해 11월에는 신선우 전 SK 감독이 가자고 있던 최다승 기록(362승)을 깨뜨리기도 했다.
체력을 바탕으로 한 ‘질식 수비’와 빠른 농구가 유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 유 감독은 스타가 없을 때에도 뛰어난 지략과 조직력으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상대의 수를 꿰뚫는 만 가지 수를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 ‘만수’. 유 감독은 주목받지 못한 신인이나 타 구단에서 밀려난 선수들을 스타로 키워내 ‘재활 공장장’으로도 통한다. 대표적으로 양동근과 함지훈을 최우수선수(MVP)로 키워 냈고, 이창수와 우지원 등 베테랑을 최고의 식스맨으로 재탄생시키기도 했다. 유 감독은 “기록은 누군가에 의해 깨지는 법이고, 최다승은 감독을 오래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록”이라며 첫 400승 달성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한편, 모비스는 이날 승리로 서울 SK와 함께 16승5패로 동률을 이뤄 공동선두에 복귀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