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날] 보수·진보 서로 총집결… 세대별·지역 대결 재연
입력 2012-12-18 19:25
제18대 대선이 이처럼 박빙 속에 치러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독주를 전망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무소속 안철수 전 후보의 등장은 대혼전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이후 ‘박근혜 대세론’은 금이 갔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급피치로 대선은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연출했다. 40% 안팎의 견고한 콘크리트 지지율을 가진 박 후보, 놀라운 뒷심으로 박 후보와 오차범위 내 싸움을 만든 문 후보, 새 정치로 온 나라를 뒤흔든 안 전 후보가 펼친 대회전은 흥미진진했다.
◇물고 물린 박(朴)·문(文)·안(安)=대선을 약 석 달 남겨 둔 지난 9월 중순 지지율 구도는 ‘박·안·문’ 순이었다. 당시 박 후보는 5·16 발언 논란, 총선 공천헌금 파문, 안 전 후보 불출마 협박 파문 등으로 바닥을 친 지지율을 봉하마을 방문, 안대희 전 대법관 영입 등으로 어느 정도 수습한 상황이었다. 안 전 후보는 ‘룸살롱 출입 및 브이소사이어티 논란’을 적극 해명한 뒤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문 후보는 모바일 경선 불공정 논란을 딛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셋 중에 안 전 후보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는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 등 새누리당의 검증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양자 대결에서 박 후보를 눌렀고 대선 판을 주도했다. 반면 박 후보는 지난 10월 들어 터진 정수장학회의 MBC·부산일보 지분 매각 추진 논란,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특검 등이 이어지면서 주춤했다. 문 후보는 ‘박·안’ 싸움에 밀려 존재감을 찾지 못했다. 대신 민주당 송호창 의원의 안 전 후보 캠프 합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 후폭풍을 막느라 바빴다. 선대위 친노무현계 핵심 9인방 퇴진 등의 처방을 내놨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잘 나가던 안 전 후보의 레이스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은 지난 10월 23일 인하대 강연이었다. 그는 강연에서 국회의원 정원 감축, 정당 국고보조금 삭감, 중앙당 폐지·축소를 정치 쇄신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학계·시민단체 등에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며 큰 반발이 일었다.
11월에 접어들자 문 후보와 안 전 후보의 야권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됐다. 두 후보가 첫 회동을 가진 것을 기점으로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양측은 서로 유리한 방식을 고집했고 한때 단일화 논의가 중단되는 등 파행을 거듭했다. 유권자들의 실망이 쏟아지면서 두 후보 지지율은 떨어졌으며 특히 ‘정치경험 부족’ 이미지가 부각된 안 전 후보가 큰 타격을 입었다. 한편 박 후보는 야권의 자중지란을 틈타고 지지율이 상승했다. 결국 안 전 후보가 대선 후보 등록 이틀 전인 지난달 23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을 약 10일 앞둔 시점에서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격차는 약 5% 포인트였다. 문 후보가 뒤지자 안 전 후보는 이달 7일 부산에서 첫 공동유세를 시작하며 ‘문재인 살리기’에 나섰다. 여론조사 공표 기간인 13일 이전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와 문 후보의 격차는 약 1∼3% 포인트였다. 일부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근소하게 역전하기도 했고 결국 1% 포인트(30만표) 싸움의 초박빙 선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보수 대 진보 격돌=박 후보와 문 후보가 양자 대결을 펼치기 시작하면서는 여와 야, 보수와 진보는 각각 총집결했다. 정치인들의 진영 이동도 어느 때보다 극심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덕룡 민화협 상임의장과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은 문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반면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한화갑 한광옥 전 의원 등은 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특히 선거 막판에 창궐한 여야의 네거티브·흑색선전, 보수와 진보의 충돌 등은 선거 이후에도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 후보 측은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을, 박 후보 측은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서로를 비방했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꼼수’는 박 후보 측의 ‘신천지’ 연루설을 제기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