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도 만들어 이잡듯 슈퍼카 숨긴 곳 매일 확인도… 예보, 저축은행 부실책임자 ‘은닉재산 찾기 전쟁’
입력 2012-12-18 19:15
지난 2월 27일 예금보험공사 재산조사실로 제보가 하나 접수됐다. 제보자는 지난해 2월 영업정지된 A저축은행의 직원. 이 직원은 “제3자를 거쳐서 A저축은행 회장 김모씨의 처남 정모씨에게로 1996년부터 2009년까지 13년간 흘러들어간 돈이 무려 156억원에 이른다”고 증언했다. A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는 전국을 뒤흔들었지만 1년이 넘도록 김 회장이 빼돌린 재산의 행방은 묘연했었다. 제보를 바탕으로 길고 긴 ‘은닉재산 찾기 전쟁’이 시작됐다.
예보 재산실은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외제 ‘슈퍼카’ 등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들이 숨긴 재산을 찾아내 국고에 환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보 재산조사실 직원들은 현장 조사를 할 때 특히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들은 마치 형사와 같다. 은연중에 툭 던지는 말, 통장에 연필로 메모를 했다 지운 흔적 등 사소한 것에서도 실마리를 찾는다.
18일 찾아간 예보 재산조사실은 한창 회의 중이었다. 회의실 화이트보드 위에는 김 회장의 가계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가계도조차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보 재산조사실 직원들은 접수된 제보에서 출발해 김 회장, 처남 정씨, 제3자에 대한 계좌추적에 나섰다. 예보는 2014년까지 일괄 금융조회권을 한시적으로 갖고 있다. 모든 금융회사에 부실 책임자의 금융재산 정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각 금융회사로부터 받은 방대한 분량의 계좌 거래내역을 일일이 비교하며 자금 흐름을 거꾸로 추적했다. 꼬박 두 달이 걸려 마침내 김 회장을 중심으로 처남과 처제까지 연결되는 ‘검은 거래’를 보여주는 가계도가 완성됐다. 예보는 당장 처남 정씨의 예금 20억원과 퇴직연금 5억원을 가압류했다. 경기도 김포에 정씨가 약 80억원 상당의 토지와 공장을 가진 사실을 확인하고, 가처분을 진행하는 성과도 거뒀다.
예보 재산조사실은 숨겨둔 돈뿐만 아니라 자동차, 미술품 등 현물을 찾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현물은 보관 등이 힘들어 곤란한 경우가 많다. 특히 지난해 퇴출된 도민저축은행 채규철 회장에게서 압류한 슈퍼카는 처음 접해보는 물건이었다. 계좌에 들어있는 돈과 달리 자동차는 타고 사라지면 그만이다. 이 때문에 예보 재산조사실 직원은 매일 아침마다 슈퍼카가 서 있는 서울 강남의 한 지하주차장으로 출근해 ‘안부’를 확인해야 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회수할 자산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집안에 현금으로 쌓아두거나 빼돌린 돈을 투자 실패로 허공에 날린 경우는 마땅히 환수할 방법이 없다.
이종훈 예보 재산조사실장은 “고객 돈으로 호화 생활을 즐기면서 서민을 갈취한 저축은행 부실 책임자들이 잘 먹고 잘살게 놔둘 순 없다”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깊고 정밀하게 조사해 파렴치한 이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