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은주] 새 정부의 첫번째 과제

입력 2012-12-18 18:38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12월 초,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모임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새 대통령이 누가 되든 경제 때문에 취임 초부터 참 어려울 거야. 다른 대통령 당선자처럼 한가하게 부처 조정하고 조각하고 할 여유가 없잖아.” “그러게, 초반에 잘못 대처하면 갈수록 더 어려워질 테니까.” “잘못하면 레임덕이 가장 빨리 오는 정부가 될지도….”

늦어도 오늘 중으로 대통령 당선이 확정될 것이다. 오랜 선거전을 치르고 새로운 출발을 앞둔 대통령 당선자는 물론이고 승리의 기쁨에 차 있을 수많은 주변 사람들과 정치권 관련자들에게 초를 치자는 의도가 결코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고달픈 일상생활에 아무런 변동이 없고 보수-진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는 더더욱 거리가 먼 서민들의 망년회 저녁자리에 스며든 경제적 위기의식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전달하려는 것이다. 이런저런 송년 모임에서 만난 ‘보통사람’들은 불황으로 인한 매출감소와 조기명퇴를 걱정하고 부동산 활황기에 무리해서 집 사느라 진 빚을 걱정하고, 자녀들 사교육비를 걱정하고 자신이 가입한 펀드 수익률이나 변액보험 수익률이 너무 낮은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실제로 2010년 6.3%였던 경제성장률이 작년에는 3.6%로 하락했고 올해 1분기에는 2.8%, 2분기에는 2.3%로 떨어졌으며 급기야 3분기에는 1.6%에 그쳤다. 올해는 대기업 수출로 버텼지만 내년은 원화절상 압력과 유럽재정위기 장기화 때문에 그나마 대기업 수출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수는 어떨까? 가계부채가 한계에 달해 소비와 저축률이 급격하게 줄고 있고 부동산 거래, 증권거래도 얼어붙어서 소비의 자산효과도 기대할 수 없으며 은행들은 늘어나는 연체율을 걱정해 가계나 소호(SOHO), 중기대출의 고삐를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이미 빨간불이 켜진 경제성장률이 내년에는 더 나빠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만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노후 대책 없는 베이비부머들의 무더기 은퇴는 더 설명할 필요 없이 예고된 인구재앙이다. 한마디로 어두운 불황의 긴 터널이 큰 입을 벌리고 한국경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권을 넘겨받은 것이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가 극에 달했을 때도 대통령이 바뀌어 5년 내내 위기수습으로 고생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그때는 적어도 세계경제는 호황이었다. 위기상황에 대한 국민적 단합 때문에 정치적 돌파력도 있었고 내부를 추스르는 한편 수출을 독려하는 등 나아가야 할 방향도 분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때보다 훨씬 질 나쁜 장기불황의 초입에 있는데도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이 분명치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 위기라고는 하지만 오늘 내일 당장 국가가 파산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국민들의 단합된 지지나 정치적 돌파력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 60년간 한국경제를 지탱했던 수출도 어둡기만 한 형편이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란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을 넘겨받게 된 새 정부는 당선의 기쁨보다는 당장 내년도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인수위가 사실상 경제비상대책 기구 역할을 해야 할 것이고 정부부처도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효율적인 기구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 조각 역시 당선의 공로를 따지거나 주변 사람들만 중용하는 보은(報恩)인사가 아니라 시장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을 중용하는 평판(評判)인사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만성적인 저성장과 저금리, 부동산 버블 붕괴, 고령인구 급증 등 일본식 장기불황의 초입에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한 한국의 국운과 국민의 미래는 이제 막 시험대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 정부의 현명한 선택만 남았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