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꿈의 내각
입력 2012-12-18 18:38
임금이 충직한 신하에게 상을 내렸다. “30분간 걸어 다니며 줄을 그어놓으면 그 땅을 주겠다.” 신하는 자신을 중심으로 조그만 원을 그렸다. 그 크기가 너무 작은 데 놀란 임금이 말했다. “욕심 없는 그대를 옆에 둔 것이 자랑스럽다. 그런데 원 안의 조그만 땅은 무엇에 쓰려는고?” 신하가 정색하며 말했다. “저는 원 밖의 땅을 갖고자 할 따름입니다.”
왕이 되는 것도, 신하를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한 나라의 조정을 구성하려면 천하의 인재를 모아야 한다. 지극한 애국심, 미래를 열어나갈 경륜, 시대 흐름을 읽는 통찰력과 리더십, 만인에게 책 잡히지 않을 도덕성,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건강 등 갖추어야 할 덕목이 한두 가지 아니다. 우리 역사상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사극을 많이 써온 신봉승 선생이 쓴 ‘세종,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에서 최고의 내각을 공개했다. 조선왕조 27명 임금과 700여 명의 고위공직자를 통틀어 세종이 가장 뛰어나니 대통령을 맡고, 선조∼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이 국무총리에 올랐으며 법무장관 최익현, 고용노동 김굉필, 문화체육 박지원, 지식경제 정약용, 국토해양 홍대용, 특임 이항복, 검찰총장 조광조로 조각했다. 대부분 귀에 익은 명망가들이다.
문을 조선왕조 밖으로 열면 한층 다채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여러 문헌이나 사이트를 보면 ‘세종=대통령’이 압도적인 가운데 김구 선생도 후보로 올랐다. 국무총리는 황희를 꼽는 사람이 많고, 고구려 을파소를 지명한 경우도 있다. 해군참모총장 이순신은 만인이 동의하는 자리였고 과학기술부 장영실, 외교통상 서희, 보건복지 허준, 여성가족부 신사임당이 뒤를 이었다.
이밖에 이황은 기획재정부와 교육부 장관으로 천거됐고, 이이와 광개토대왕이 국방장관을 놓고 경합했으며, 육군참모총장은 을지문덕 연개소문 강감찬 김유신이 하마평에 올랐다. 의외의 인물은 국세청장 김선달, 건설교통 김정호, 식약청장 대장금이다. 웃기려고 그랬겠지만 여성부 장관 최연희도 있다.
오늘 밤 새 대통령 탄생과 더불어 당상관을 꿈꾸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부의 고위직 등용은 개인과 가문을 넘어 출신지역이나 모교까지 명예로 여긴다. 그러나 공직에 오를 사람은 위에 천거된 사람들처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놓아야 한다. 후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꿈의 내각을 짤 것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