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큰 폭 감축 약속, 결국 차기정부에 부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 공과
입력 2012-12-18 22:05
이명박 정부의 치적을 꼽으라면 아마도 손가락을 다 펴기 전에 녹색성장정책이 들 것이다. 특히 국제기후기금(GCF)의 인천 송도 유치로 대표되는 녹색성장의 글로벌 브랜드화, 환경외교의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또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설정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배출권거래제의 법적·제도적 틀과 인프라도 구축됐다. 그런데도 2008년 광복절 저탄소녹색성장의 비전이 선포되고 4년여 지난 지금 녹색성장은 대선 후보와 언론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녹색성장의 공과 과, 차기정부에서 계승해야 할 과제와 수정·보완될 과제들을 살펴본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은 6억1000만톤으로 2010년에 이어 세계 7위를 기록했다. 2008년 세계 9위, 2009년 세계 8위, 2010년 세계 7위였던 우리나라는 2011년 배출량이 전년도에 비해 2000만톤, 약 3%가량 늘었지만 순위는 그대로였다. 이는 최근 유럽위원회 공동연구센터와 네덜란드 환경영향평가청이 공동 발간한 보고서에 기초한 결과다.
우리 정부는 2009년 11월 202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또는 2005년 대비 4% 감축)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오히려 늘고 있는 것이다.
◇실종된 오염자부담원칙(PPP)=MB정부는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5대 녹색강국에 진입한다는 비전아래 3대전략과 10대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10대 정책방향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이 일부 또는 모든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오염시킨 자가 정화 또는 복구비용을 내놓거나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오염자부담원칙(PPP)은 관철되지 않거나 미뤄졌다.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도 PPP가 지켜져야 감축된다. 이 때문에 “고통분담은 (다음 정부에) 떠넘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온실가스를 효율적으로 줄이기 위한 배출권거래제다. 배출권거래제는 사업장에 할당된 목표(배출 허용량)보다 더 배출한 사업장은 온실가스를 사들여야 하고 덜 배출한 사업장은 배출권을 팔도록 하는 제도다. 지난달 15일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공표됐다. 그렇지만 배출권거래제의 시행 시기는 당초 2012년에서 우여곡절 끝에 2015년으로 후퇴했다.
또한 거래제 시행 초기3년 분량은 무상 공급되며, 2018년부터 부분적으로 경매 등을 통한 유상할당이 도입된다. 특히 사전에 신고된 배출량이 부정확할 경우 무상할당은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
그러나 기업들은 지금도 무상할당기간을 2010년까지 연장해달라고 떼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할당이나 구매로 확보한 배출권 이상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배출권 평균 가격의 3배(톤당 최대 10만원)를 과징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와 교통수요관리 등=내년 하반기부터 도입하기로 했던 ‘저탄소차 협력금제’의 시행시기도 2015년으로 늦춰졌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도는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차에 보조금을 주고, 많이 내뿜는 차에 부담금을 부과해 자동차 과소비를 억제하고 저공해차 기술개발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확보된 1515억원의 예산도 삭감됐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국내 자동차 업계들과 내년 하반기 제도 도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최종 관계부처장관급 회의에서 자동차 제작사들에게 준비시간을 더 주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부처간 합의와 국회 상임위 위원들의 동의를 거친 법안이 다시 수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는 미국정부가 반대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대형차 비중이 높은 메이커들이 판매 감소를 우려해 벌인 로비가 통한 것으로 보인다.
논의만 무성했던 탄소세 도입도 결국 기약 없이 무산됐다. 또한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1인당 전기소비가 미국 다음으로 높을 정도로 산업계의 전기낭비가 심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는 당위론은 ‘누가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 것이냐’는 정치논리와 현실론에 또 무릎을 꿇었다.
교통분야의 수요관리와 건물부문 에너지 감축도 오염자부담원칙이 관철되지 않는 바람에 실패했다. 교통부문과 건물부문은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감축목표가 각각 34.3%와 26.9%로 높게 잡혀 있지만, 지금까지 강력한 감축수단이나 감축실적이 보고되지 않고 있다.
교통유발부담금 및 도심주차료 인상과 혼잡통행료 부과대상지역 추가지정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녹색성장의 성과들=녹색성장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들도 환경외교의 성과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지역에 유치했다.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을 도울 GCF 사무국은 2020년부터 매년 1000억달러 규모로 조성될 기후재원의 상당 부분을 집행하게 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연간 3800억원 규모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책과제로서 녹색성장이라는 개념을 국제적 자산으로 만들었다는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UN 세계녹색경제전략사업(GEI)은 2010년 4월 최초 국가보고서로 ‘한국의 녹색성장보고서‘를 발간했다. 우리나라가 주도한 GGGI(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의 설립과 국제기구화도 주목할만하다.
또한 글로벌 녹색성장포럼, 녹색성장 정상회의 등의 연례개최를 통해 녹색성장 확산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김병완 광주대 교수는 지난 14일 열린 ‘지속가능발전 정책포럼’ 발제문에서 “녹색성장정책은 ‘녹색’의제를 국정의 핵심과제로 격상시켜 녹색정책의 주류화를 이뤄내는 한편 국제적으로 녹색성장 의제를 주도함으로써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말했다.
◇녹색성장이냐, 지속가능발전이냐=녹색성장은 경제와 환경의 조화를, 지속가능발전은 이 둘과 함께 사회를 합쳐 3자간의 통합과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발전과 환경보전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사회통합 필요성은 도외시했다.
김 교수는 “지속가능발전 개념은 녹색성장의 상위개념이고 녹색성장은 지속가능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 개념”이라며 “현 정부는 4대강 살리기 등 개발사업을 녹색으로 포장하고 녹색의 정체성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상헌 한신대 교수는 “녹색성장이라는 하위개념이 지속가능발전이라는 상위개념을 내몰았다”면서 “녹색성장전략은 이같은 개념들 사이의 충돌, 반환경적 토건사업, 우선순위의 오류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