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1] 미디어 전문가가 본 18대 대선-김택환 경기대 교수

입력 2012-12-17 22:18


SNS 신뢰 추락, 영향력 급감

검증 안 된 여론조사만 난무


김택환(54)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는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를 보도하는 언론매체들이 검증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를 쏟아내 제 기능을 못했다”고 비판했다. 매번 선거 때마다 경마식 보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개선될 기미가 없으며, 이로 인해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하는 데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이번 같은 방식의 선거가 다시 반복될 경우 우리나라의 미래는 암울해진다”고 역설했다. 진영 싸움에 매몰돼 정책·공약·비전이 보이지 않는 선거 풍토로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미디어 전문가인 김 교수는 30년 가까이 독일을 연구해 온 독일 연구가이기도 하다. 한국과 독일의 정치·미디어 문화에 대해 비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 3차 TV토론이 있었던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김 교수를 만나 이번 대선과 언론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이번 대선을 ‘정책·공약 없이 여론조사만 난무했던 선거’, ‘최초의 가케무샤(그림자 무사, 대역) 간 대결’, ‘상상력이 부족한 선거’ 등으로 규정했다.

검증 안 된 여론조사 쏟아내

-대선 보도를 다루는 미디어들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마디로 출렁이는 파도만 보여주고 밑바닥의 조류(민심)를 읽지 못하고 있다. 검증 안 된 여론조사 결과들을 쏟아내며 경마식·흥미식 선거보도로 일관한 결과다. 지나치게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더 큰 문제는 여론조사를 믿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갤럽, 미디어리서치 등 여론조사 회사들이 모여 (여론조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집단 논의를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모집단의 표본을 추출하는 작업부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됐다. 특히 전화 조사에 잘 응하지 않는 젊은층에 대한 조사가 쉽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 강원도지사 선거 당시 여론조사의 오차가 20%를 넘어 틀렸는데 여론조사의 난맥상을 잘 보여주는 예다. 그런데 미디어들은 부정확한 여론조사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

여론조사에 대한 검증 시스템도 마련돼 있지 않다. 여론조사 기관들에 문제제기하면 ‘우리는 장사하는 기관’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우리 미디어들이 이런 여론조사를 가지고 대선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제대로 된 국가 중에 이런 식의 선거보도 행태를 가진 곳은 우리나라뿐이다.”

-보다 진일보한 여론조사 기법이 시도된 예는 없나.

“‘성향 가중 결합 추정’이라는 방식이 있다. 지금처럼 단순히 지지후보를 묻는 방식이 아니라 응답자의 여러 가지 정치성향 등을 섞어서 물어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철폐나 경제민주화 등 개인의 성향을 파악해 지지후보를 추론하는 것이다. 지난 4·11 총선 격전지 가운데 김태호(새누리당), 김경수(민주통합당) 후보가 붙은 경남 김해을 선거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겠다. 당시 여론조사 지지도를 단순히 조사해보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고 있는 김경수 후보가 다소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여기에 유시민(진보정의당 전 선대위원장) 변인을 넣어봤다. 그러자 응답자의 75%가 유시민 비토(거부)로 나왔다. 다른 변인들을 묶어서 분석해보니 김태호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온 것이고 선거 결과도 같았다. 물론 지금 당장 이런 방식의 여론조사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 자료가 축적돼야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

독일은 여론조사 검증위원회 운영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에서는 정교한 야구 통계기법이 활용돼 다양한 변인을 분석해 여론을 파악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여론조사를 검증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독일을 예로 들어보겠다. 독일에서는 여론조사가 룰을 제대로 지켰는지 검증하는 검증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정부에 독립적이며 여론조사와 관련한 민간 권위자들이 참여한다. 모든 여론조사를 검증한다. 검증은 사회과학의 기본이다. 독일이 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이상한 것이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를 어떻게 봐야 하나.

“단순 참조용으로 봐야 한다. 여론조사로 투표의 소신이 꺾여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삶에서 그리고 우리시대의 결핍이 무엇인지 스스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에 무엇을 변화시켜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과거 징벌적 투표 성향도 지양돼야 한다. 지금 시대정신은 결국 민생이다. 민생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를 찾는 방식을 스스로 고민해야 한다.”

SNS 신뢰도 추락

-이번 대선에 끼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영향력은.

“영향력이 많이 감소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거의 몰락 수준이다. 신뢰도 추락이 원인으로 보인다. 종전 선거까지 진보진영에서 활용해 재미를 많이 봤다. 보수진영도 뛰어들었다. 두 진영에서 활용하고, 흑색선전이 난무하면서 노이즈(소음)가 발생했다. 신뢰도 추락은 예정돼 있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자리를 카카오톡이 빠르게 대체했다. 순식간에 다른 매체로 갈아타는 우리나라 뉴미디어 이용 패턴을 잘 보여준다. 이에 비해 기존 매체들의 의제설정 기능은 유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2세 정치인 후보 간 대결

-대선 후보들과 캠프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

“역대 대선 후보들은 모두 스스로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 올라온 이른바 ‘창업자’들이었다. 이승만∼이명박 대통령 모두 그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초로 가케무샤들이 나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역무사로서 한계가 있었다. 기존 정치인의 후광 효과를 보는 2세 정치인이 전면에 나선 최초의 대선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 박정희-노무현 대리전 양상이 되다 보니 진영싸움이 종전보다 강화됐으며, 일차원적이고 단순 논리가 먹히는 선거가 돼 버렸다. 중간에 등장한 안철수 전 후보가 이런 진영 구도를 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물러나버렸다.

양 캠프에 포진해 있는 홍보 담당자들의 역할은 소통보다 네거티브 전략에 치중하는 모습이었다. 홍보 담당자들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끊임없이 귀를 열어놓고 후보와 유권자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후보에게 생생한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보다는 ‘스핀닥터’(홍보전문가·대국민 여론 조정을 담당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언론 조작을 서슴지 않는 모사꾼이라는 의미도 있음)로서 네거티브 홍보 전략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했다.”

김택환 교수는

△현 경기대 언론미디어학과 교수 △한국언론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중앙일보 미디어 전문기자 및 멀티미디어랩 소장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연구원 △독일 본대학교 언론학 박사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