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도시의 섬’ 쪽방을 품다] (상) 동행 르포-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겨울나기

입력 2012-12-17 18:25


하루 방세 6000원 꼴 … 칼바람 속 희망으로 연명

‘2013년은 병(소주병)없는 마을로’, ‘건강한 동자동마을 만들기’….

지난 15일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의 ‘동자동 사랑방’. 6.6㎡(2평) 남짓한 회의실 벽에는 비장한 각오들이 한마디씩 적혀 있었다. 새해를 앞둔 동자동 공제협동조합원들의 다짐이었다.

“동자동 쪽방지역 주민들 스스로 출자해서 공동기금을 조성했어요. 긴급한 생활자금을 50만원 한도내에 무담보 무이자로 대출해주고 있어요.”

이태헌(56) 조합 이사장의 브리핑은 2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들은 영락교회 사회봉사부 팀장인 유창원 목사와 전도사 일행. 유 목사는 “내년부터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에 초점을 맞춰 사회봉사활동을 펼쳐 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면서 “일회성 구제사업을 지양하고 자립을 도울 수 있는 섬김 대상을 찾다가 이 곳을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교회의 발걸음이 ‘도시의 섬’ 쪽방촌을 향하고 있다. 한국쪽방상담소협의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파악된 쪽방 거주자만 6000여명. 현재 쪽방 상담소가 활동 중인 10개 지역 기준이다. 이 가운데 서울 지역 쪽방촌 거주자 비율이 절반 정도에 달한다.

교계가 쪽방촌의 자립 지원에 눈길을 돌리게 된 건 섬김·구제 사업의 지속성을 지향하면서부터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단발성 구제행사보다는 사역 대상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꾸준히 돕자는 것. 가장 먼저 팔을 걷어 부친 곳이 한국교회희망봉사단(한교봉·대표회장 김삼환 목사)이다. 이날 동자동 쪽방촌을 함께 동행한 최수철 한교봉 사업국장은 “정기적이고, 중·장기적으로 꾸준하게 도울 수 있는 대상 가운데 동자동 쪽방촌을 첫 번째 케이스로 꼽았다”면서 “특히 주민 자활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이 돋보이는 곳”이라고 말했다.

동자동 쪽방촌의 역사는 반세기가 훌쩍 넘는다. 1000여 가구가 거주하는 이곳은 1인 가구가 대부분이다. 쪽방 거주자이기도 한 이 이사장의 3층 쪽방에 들어가 봤다. 지은 지 60년이 넘은 건물 벽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고, 비닐로 대충 틀어막은 쪽방 창문에서는 칼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6.6㎡(2평)가 채 안되는 방은 월세 18만원. 하루 방세가 6000원 꼴이다. 이 곳에서 여덟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지만 그는 요즘 생기가 넘친다.

지난해 3월 처음 문을 연 쪽방촌 주민들의 공제협동조합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 현재 조합원 수는 380명. 한 계좌당 5000원인데, 이달 초 현재 194명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돈을 빌려 줬다. 대부분 주거·의료·생활 자금 등 긴급한 용도다. 기한내 상환률은 70%선으로 양호한 편. “갑작스럽게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정말 요긴하지요. 덕분에 조합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요. 앞으로는 조합원들이 자립할 수 있는 공동 사업을 해볼까 함께 구상 중입니다.(이 이사장)”

한교봉이 주목한 건 바로 ‘자활 공동사업’이다. 이미 지난달부터 주민 5명의 풀빵 리어카 창업과 주거환경 개선 사업 등 지원에 본격 나선 상태다. 이날 방문한 영락교회 측은 공제조합 운영비 지원을 포함, 다양한 자립사업 지원 방안을 모색 중이다. 김종생 한교봉 사무총장은 “쪽방 주민들의 자립지원을 통해 교회 섬김 사역의 모범사례를 제시할 계획”이라며 “한국교회가 쪽방촌 주민 자립을 위해 함께 손 내밀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