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샘] 비장한 결의

입력 2012-12-17 19:26

男兒立志出鄕關

學若無成不復還

埋骨何期墳墓地 

人間到處有靑山

남아가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나가니

학문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살다 죽을 곳이 어디 고향의 선산뿐이런가

인간세상 어디든지 청산이 있는 것을 

일본 시인 월성(月性:1817∼1856) ‘동쪽으로 떠나며 벽에 쓰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시인의 말처럼 시련은 사람의 정신을 단련시킨다. 사람이 살면서 온몸을 던질 때가 있는데, 그러한 순간에 나오는 시는 대개 비장미가 넘친다. 먼 길을 떠나거나 죽음을 앞두고 쓴 시가 특히 그러하다.

월성은 일본 에도(江戶) 시대 말기의 시승(詩僧)이자 정치가인데, 젊은 시절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면서 이 시를 지었다. 대장부가 조롱박처럼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다니며 큰 뜻을 펴야 한다는 사상은 동양의 유구한 전통이기도 하다. 뜻을 펼칠 무대, 청산은 도처에 있는 법이다.

지사나 혁명가에게 이 시가 크게 어필하였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이 시를 개작하여 뜻을 드러냈고, 중국의 혁명가 모택동(毛澤東)도 고향을 떠나면서 이 시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대한의 영웅 안중근(安重根) 역시 “남아가 6대주에 뜻을 세웠으니, 일을 이루지 않으면 죽어도 돌아가지 않으리(男兒立志六大洲)”라는 시를 남겼다.

사기(史記) 자객열전에서 가장 비중 있게 서술된 인물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형가(荊軻)이다. 고점리는 축을 타고 흰 옷을 입은 전송객은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그는 노래한다. “바람은 소슬하고 역수는 차가운데, 장사 한 번 떠나가면 다시 오지 못하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

이번 대선에서 두 진영은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가 승리의 대풍가(大風歌)를 노래하게 될지, 또 비극의 해하가(垓下歌)를 부르며 오강(烏江)에 다다라 어떤 선택을 할지, 그 운명과 선택이 자못 궁금해진다.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