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아이들 보호”…총구에 맨몸으로 맞섰다

입력 2012-12-16 22:37
해맑았던 6∼7세 어린이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비극 현장에서도 영웅들은 어김없이 존재했다. 초등학교 교장과 교사들은 반자동 소총으로 무장한 괴한의 총구에 맨몸으로 맞섰다. 영웅들의 사명감은 본능마저 압도했다.

14일 오전 9시30분쯤(현지시간)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주의 한적한 소도시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 외톨이 애덤 랜자(20)가 무차별 총격으로 학교를 패닉으로 몰아넣기 전까지 이 날은 크리스마스를 불과 열흘 앞둔 평범한 하루였다. 당시 회의실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돈 혹스프렁(47) 교장은 ‘드르륵’ 소리에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사이렌을 울릴 새도 없이 확성기에 먼저 손이 갔다. 분명한 총소리였다. 비명 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녀와 은퇴를 며칠 앞둔 심리상담교사 메리 셜라크(56)는 반사적으로 복도로 뛰쳐나갔다. 회의실에 남아 몸을 숨긴 사람들에게는 다급히 “문을 잠그라”고 외쳤다. 두 사람은 교실마다 상황을 알리다 랜자와 마주쳤다. 얼마 뒤 두 사람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교사 시어도어 바르가는 “돈이 켜놓은 확성기가 많은 목숨을 살렸다. 대피할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며 울먹였다.

영웅은 또 있었다. 1학년 교사 빅토리아 소토(27)는 총소리가 들리자 아이 10여명을 교실 내 벽장으로 몰아넣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용기밖에 없었다. 소토는 문을 박차고 들이닥친 랜자에게 “아이들은 여기 없다. 체육수업에 갔다”고 외쳤다. 란자의 총구는 소토를 겨눴고, 그녀는 그곳에서 쓰러졌다. 소토의 사촌인 경찰관 짐 윌시는 ABC방송에 “비키(빅토리아의 애칭)는 범인과 아이들 사이를 막고 서 있었다”며 “그녀는 분명히 영웅이었다”고 말했다.

네 아이의 엄마인 특수교사 앤 매리 머피(52)는 학생들을 몸으로 가린 채 숨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살아남은 교사들 역시 사명감에 투철했다. 유치원 교사 재닛 볼머는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들을 교실 내 안전지대로 데려갔다. 울먹이는 아이들에겐 “나쁜 사람이 있단다. 조용히만 한다면 괜찮을 거야”라고 다독였다. 그리고는 동화책을 꺼내 들려줬다. 볼머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최소한 총 소리가 아이들의 마지막 기억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밖에도 책꽂이와 악기 등으로 교실 문을 막은 교사들, 잠기지 않는 문을 몸으로 막다 총탄에 다리 관통상을 입은 교사, 총탄을 무릅쓰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아이들에게 “숨어라”고 외쳤던 관리인 등 많은 영웅들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지 경찰은 랜자의 총격으로 아이들 20명과 함께 희생된 교직원 6명은 모두 여성이었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희생자를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전 세계 지도자들은 위로의 조전을 띄웠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