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경집] 콘텐츠는 거창한 게 아니다

입력 2012-12-16 19:43


지난 2주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 두 차례나 다녀왔다. ‘천하제일 비색청자’라는 고려청자 특별전시회 때문이었다. 23년 만에 국보와 보물을 비롯한 많은 청자를 한곳에서 볼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과 일본의 여러 박물관에서 참여한, 그리고 개인소장품까지 망라한, 그야말로 특별한 전시회다. 가멸찬 전시로 눈이 호사를 누렸기에 폐막 전까지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또 갈 수밖에 없었다. 박물관은 나의 최고의 나들이 코스요 행복한 소풍지이다.

그런데 왕릉이나 고궁에서 늘 느끼는 안타까움을 박물관에서도 느낄 수밖에 없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입장권 디자인은 왜 그리 무성의하고 볼품없는지! 외국의 박물관 입장권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다. 외국인도 많이 찾는 곳들인데 입장권을 보면 초라해서 부끄러울 지경이다. 두 해 전 추사고택에서 만났던 신선한 충격이 새삼 떠올랐다. 충남 예산에 있는 추사고택에서 입장료 500원을 내고 받은 입장권은 뜻밖에 비닐 코팅에 앙증맞은 리본까지 달렸다. 일련번호까지 적힌 그 입장권에는 추사고택의 사진과 추사의 글씨가 앞뒤로 박혀있었다. 그걸 받았을 때 들었던 느낌은 ‘아, 이거 책갈피로 쓰면 딱이겠다!’였다.

볼품 없는 국립박물관 입장권

‘악착같이’ 책을 읽지 않는 세태다. 동네 책방은 문을 닫았다. 서점이 전혀 없는 동이 서울에서 30%쯤 된다니 충격적이다. 그런데도 끄떡도 않는다! 홍익서점처럼 긴 역사를 가진 중간급 책방도 폐점 위기에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회생할 여지를 남겼다. 아무리 책을 읽으라고 떠들어도 소용없다. 그런데 이렇게 멋진 책갈피를 고궁, 왕릉, 박물관 등에서 입장권으로 받는다면 어떠할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누가 봐도 멋진 책갈피니 시내 나간 김에 책방에 들러 책을 사고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나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에 정식으로 제안하고 싶다. 제발 고궁, 왕릉, 박물관 입장권을 세련되고 멋지게 다시 만들어보시라. 엉성하고 퇴색한 사진은 이제 걷어치우고 우리나라 최고의 사진작가들에게 의뢰해서 정말 눈이 번쩍 뜨게 할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라. 일련번호와 바코드도 적고 추사고택처럼 비닐 코팅해서 예쁜 색실로 리본까지 덧붙여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아무도 그 입장권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할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런 입장권을 받으면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어서 고이 간직할 것이고 그 ‘책갈피’를 볼 때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새삼 떠올릴 것이다.

간직하고 싶도록 만들었으면

명색이 이 나라 문화의 가치를 고양한다는 국가기관에서 이처럼 무성의하고 무감할 수 있다는 게 안타깝고 화가 치민다. 예산군이라는 작은 자치단체에서도 그런 아이디어를 실행하고 있지 않은가. 싸이 노래라는 이유로 금지곡에 넣었다가 ‘강남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슬그머니 목록에서 지운 여성가족부의 논리적 비일관성도 촌스럽고 우습지만 K팝에 모든 것을 걸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문화부의 천박성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이다. 돈 지원하고 외교력 동원한다고 한류가 뜨는 게 아니다. 상상력과 창의력에서 저절로 길러진다. 그런데도 자꾸만 바늘허리에 실을 묶으려 한다.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슬쩍 얹으려는 심사와 다르지 않다. 이젠 제발 그런 허튼 짓 그만두고 있는 거나 제대로 활용하는 데에 머리를 모으라고 권하고 싶다.

고궁, 왕릉, 박물관 입장권에서 그 나라의 문화적 품격을 가늠할 수 있다. 콘텐츠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다. 그런 입장권 받아본 시민들의 안목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그게 제대로 된 콘텐츠의 배양이다. 책갈피로 쓸 수 있어서 책까지 사 본다면 그건 멋진 덤이다! 제발 그런 입장권 좀 만들어주시라.

김경집(인문학자·전 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