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배고픔과의 대치다… 김다은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
입력 2012-12-16 17:58
속성상 쥐는 쥐구멍 안에서 살아간다. 쥐구멍에서 나올라치면 빗자루 같은 걸로 사정없이 얻어맞거나 최악의 경우 쥐약을 삼킬 각오를 해야 한다. 쥐는 고립된 존재이자 혐오의 대상이다.
소설가 김다은(50·사진)의 창작집 ‘쥐식인 블루스’(작가출판사)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우선 쥐와 지식인의 합성어인 ‘쥐식인’이 눈길을 끈다. ‘쥐식인’은 현실의 가장 작은 귀퉁이에 자신의 자유와 열정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영역을 마련한 이들을 지칭한다. 작가 지망생, 연극배우 지망생, 교수, 광고 기획인, 출판사 기획자, 외국인 선교사, 영화배우 등이 그들이다.
“요즘은 영화가 대세니 시나리오 작가가 어떠냐며 은근히 장르 바꾸기를 종용했던 아버지였는데, 믿었던 시나리오 작가까지 그런 비참한 삶을 산다는 것에 아버지는 아예 나의 미래의 밑구멍을 봐 버린 것이지.”(‘쥐식인’에서)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아버지가 작가 지망생인 아들에게 눈총을 보내자 아들은 차라리 배고픔에 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식구들에게 “굶어봐야, 배고픈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선언한 그는 사흘을 내리 굶는다. 방안에 갇힌 쥐로서의 쥐식인. 바깥의 일상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돌아가고 있다.
김다은은 이렇듯 ‘문학이란 대치의 공간’임을 말하고 있다. 무엇과의 대치일까. 배고픔이다. 그는 배고픔이야말로 소설가 또는 예술인의 쥐구멍이라고 설파한다. 배고픔은 절실함과 상통한다. 절실한 자만이 절실한 글을 쓰기 마련이다.
창작집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나는 배고프다, 고로 예술가다’라는 명제는 예술가의 본질과도 맞물린다. 하지만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써서는 팔리지 않는 세상이기도 하다. 김다은은 이런 불일치야말로 쥐식인이 위치하는 자리이자 예술가가 파놓은 존재론적 함정임을 8편의 ‘쥐식인 연작’을 통해 들려준다.
작가는 “쥐식인들의 블루스가 슬픈 것은 쥐구멍 밖의 음식을 가져와야 하는 수고로움과 위험천만이 아니다”며 “쥐구멍의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그 무엇이 제대로 숙성되고 있는지, 부패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