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1부)] 한국의 눈으로 독일을 보다-김재신 주독일 대사
입력 2012-12-16 19:02
독일 경제의 힘은 타협·상생
통일도 유럽통합 초석으로
김재신(55) 주독일 한국대사는 “지금 세계 어느 국가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국가는 독일”이라며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경제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선 독일 사례를 바탕으로 미래 한국의 비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한·독 양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최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한·독 양국 간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확대,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양국 간 무역·투자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며 “한국의 세계적인 정보통신(IT) 기술이 독일의 재생에너지 기술, 의료기기 기술과 접목된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대사는 주일본 대사관과 주미국 대사관 등에서 근무했고 청와대 외교비서관,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거쳐 지난 9월 주독일 대사로 부임했다. 그를 지난 1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만났다.
독일, 통일을 유럽통합의 초석으로 설정
김 대사는 “독일의 통일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통일을 유럽통합이라는 미래지향적인 비전 속에 추진했기 때문”이라며 “독일은 통일을 단순히 정적(靜的)인 목표로 설정하기 않고 EU 건설이라는 동적(動的)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큰 흐름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판단은 적중했다. EU가 동구권으로 확대되면서 가장 큰 수혜자는 독일이 됐다. 독일 경제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폴란드의 EU 가입으로 독일에 36만개 일자리가 창출됐다.
김 대사는 “동·서독의 통일은 분단된 민족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례”라며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주민이 보여준 단합과 연대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요하임 가우크 대통령 모두 동독 출신이라는 점은 통일 이후 동·서독 화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사는 “최근 구동독 지역의 드레스덴을 방문했는데 구서독의 다른 어떤 도시보다 발전한 모습이었다”면서 “구서독 지역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로 동독 지역의 경제가 성장했다”고 평했다. 독일 국민들은 구동독 지역의 재건을 위해 연대세(소득세 및 법인세의 5.5%)를 내는 등 지역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상생하는 독일의 노·사관계, 한국이 배웠으면”
김 대사는 경제불황에도 독일 경제가 굳건한 이유를 독일 기업의 주력 수출상품을 들어 설명했다. 그는 “독일 기업들은 소비재와 달리 가격과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기계·설비 등 자본재를 중심으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독일 정부의 일관된 경제정책도 높게 평가했다. 독일 전후 최대 규모의 노동·사회개혁안이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계승되며 고용시장 안정과 경제성장의 거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사회민주당(SPD)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3년 노동시장 유연화, 실업급여 지급기간 단축 및 금액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어젠다 2010’을 발표했고 2005년 집권에 성공한 기독민주당(CDU)의 메르켈 총리는 개혁 정책을 계승했다.
김 대사는 독일 경제의 진정한 힘은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노·사 간 상생문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은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노동조합은 임금인상 자제와 노사안정에 협조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사는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독일 경제가 2009년 -5.9%라는 전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기록했으나 독일 기업들은 영미권 국가들과 달리 감원으로 대응하지 않고 최대한 고용을 유지해 실업률이 0.3% 증가하는 데 그쳤다”면서 “이 같은 노사 신뢰를 바탕으로 기업 경쟁력이 개선돼 2010년 이후 신속한 경제회복의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독일, 한국을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인식
김 대사는 “2013년은 1883년 조선·독일 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수교 13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라며 “양국 관계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그는 “주독 대사로 활동하며 독일인들을 직접 만나보니 분단과 경제 기적 등 역사적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면서 “독일은 한국의 위상을 높게 평가하고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대사는 독일이 고마운 우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은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차관공여 등을 통해 적극 지원했고 19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투자를 확대해 한국이 신속하게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한·독 정상은 지난 3년 동안 3차례 만났다. 양국 정상 간 꾸준한 교류도 발전하는 한·독 관계의 증표다.
김 대사는 “독일의 경험을 통해 미래 한국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면서 “특히 양국은 지난해 11월 통일자문위원회를 설립해 통일에 대해 긴밀한 정보 공유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독일 경제 체질이 더욱 강화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복지·환경·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증진에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사는 “개인적으로 독일이 진솔하게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며 주변국과 화해하고, 이후 프랑스와 함께 유럽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부분을 연구해 한국 외교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베를린=글 하윤해 기자, 사진 이동희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