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혁상] 드론
입력 2012-12-16 18:34
아치볼드 M 로우는 교수직을 가지지 않았으면서도 항상 자신을 교수라고 소개했던 영국의 괴짜 발명가였다. 그는 여러 기발한 발명품을 처음으로 고안했다. 하지만 뒷받침할 기술이 부족해 다른 발명가에게 ‘최초’ 타이틀을 빼앗기곤 했다.
그러던 그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올랐던 1916년 로우는 영국 공군에 입대했다. 공군은 그에게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물체를 움직이는 방법을 연구할 것을 명령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최초의 무인항공기(UAV)다. 그는 이 발명 하나로 훗날 ‘무선유도시스템’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무인기 기술은 2차 세계대전 기간 독일에 의해 한층 발전했다. 독일은 무인기를 전투기 공격목표로 활용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무인기는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장난감 비행기 수준이었다. 무인기 시대는 1960년대 베트남전 개전과 함께 본격 개막했다. 윙윙거리는 수벌을 의미하는 ‘드론(drone)’이라는 애칭도 이때 붙여졌다. 이후 미국 육·해·공군은 경쟁적으로 드론 개발에 열을 올렸다.
드론은 애초 개발 목적이 군사용이었다. 그런 만큼 정찰과 정밀폭격 등 군사작전에 주로 이용됐다. 은밀한 작전이 가능해지면서 ‘하늘의 유령’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붙었다.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한 미국이 이를 십분 활용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드론의 오폭이 잦아지고 어린이 등 민간인 희생이 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도 커지고 있다. 인권단체와 학자들은 전쟁이 컴퓨터게임처럼 손쉽게 이뤄지면서 막대한 인명 살상을 초래하고,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윤리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밀주의 때문에 법적 근거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고 뜻하지 않은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비난도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유엔은 내년 초 드론 운용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기구를 설립키로 했다. 그러나 국가간 이해관계 때문에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요즘 미국 시애틀 등 몇몇 도시에선 경찰의 드론 도입을 놓고 사생활 침해, 사법권 남용 논란이 일고 있다. 실종자 수색과 피의자 추적에 한해 사용될 것이라는 게 경찰 입장이지만, 시민들은 주민 감시나 거리 시위에 투입될 것이라고 불안해한다. 특수카메라로 개인 소지품까지 샅샅이 들여다보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선량한 시민들까지 통제하고 감시하는 또 다른 ‘빅 브라더’의 출현이 아닐는지 걱정스럽다.
남혁상 차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