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양기호] 公約과 일본총선

입력 2012-12-16 18:34


오늘 치러진 일본총선 결과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참패해 권좌에서 물러났다. 3년 3개월 만에 자민당은 재집권에 성공했다. 새로운 총리로 자민당 아베신조(安倍晋三) 총재가 취임할 예정이다. 민주당의 패인은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이후 대책부재로 많은 비난을 받았다. 센카쿠열도와 독도를 둘러싼 중국 및 한국과의 갈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일본 내 보수화 흐름이 두드러졌다. 국내외 위기 속에서 내셔널리즘이 고조되면서 진보세력의 퇴조, 일본유신회 등 우익정당의 등장으로 민주당은 참패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민주당의 궁극적인 패인은 선거공약을 어겼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소비세증세, 복지정책, 원자력발전 등 당초 약속을 어겨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은 유달리 선거공약을 중시했다. 2003년 11월 총선부터 다른 정당보다 앞서서 정책공약집을 만들어 제시했다. 2009년 8월 총선에서도 정책목표, 달성시기, 재원확보에 대한 공정표가 그려져 있었다.

민주당 집권 후 취임한 하토야마 총리는 우애외교를 강조하면서 미·일동맹과 아시아외교 간 균형을 모색했다. 미·일동맹의 핵심이었던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를 외부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하자, 미국이 반발하면서 미·일 관계는 내내 흔들렸다. 결국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지 못한 하토야마 총리는 사퇴했다. 뒤를 이은 간 나오토 총리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로 폭발로 인한 국가위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임기 내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소비세 증세는 대표적인 공약 파기였다. 민주당은 2009년 총선에서 207조엔에 달하는 국가예산을 점검해 추가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엄청난 국가채무와 복지비 증가에 시달려 지난 8월 자민당, 공명당과 공동으로 소비세 증세 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5%인 소비세는 2014년 4월부터 8%, 2015년 10월부터 10%로 인상된다. 연수입이 500만엔인 가구라면 17만엔 이상 부담이 늘어난다.

아동수당, 고속도로 무료화, 대학 장학금 대폭 확충도 대부분 실행되지 못했다. 아동 1인당 매월 2만6000엔 지급은 절반으로 줄었고, 예산부족으로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으로 바뀌었다. 일본의 고속도로 통행세는 비싸기로 유명하다.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무려 1만엔(13만원)이 넘는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했던 고속도로 무료통행은 1년6개월 만에 동결됐다. 그나마 고교교육 무상화 법률이 제정된 것은 다행이었다. 민주당은 복지정책에 필요한 16조8000억엔의 추가재원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선거공약에 집어넣었다.

민주당은 1998년 창당 이래 몸집을 불리는 과정에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다양한 세력들이 몰려들었다. 자민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보수정치가들도 유입되면서 민주당은 이념스펙트럼이 지나치게 넓은 거대정당이 돼갔다.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총리 등 초기 창당세력인 호헌파, 진보파들은 미·일관계 악화, 대지진 위기로 물러났다. 소비세증세를 반대한 오자와 이치로는 49명의 의원을 이끌고 아예 민주당을 탈당해 버렸다. 진보세력이 물러나면서 민주당은 우파세력들이 주류파로 등장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의 대표적인 우파정치인이다. 이들은 진보적인 매니페스토를 하나씩 포기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을 상실하였다. 자민당 공약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 유권자들은 점차 민주당에서 멀어져갔고, 결국 자민당이나 우익정당 지지로 돌아섰다.

어느 나라든, 어느 정당이든, 선거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공약을 지키지 못한 정권이 물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대통령선거가 정책선거를 뒤로 한 채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공약으로 승부하고 공약으로 판단해야 한다. 일본총선거를 보면서 새삼 선거공약이 무섭다는 것을 실감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