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만 무성하던 스크린골프 사기도박단 첫 적발… 특수 리모컨으로 방향·비거리 조작
입력 2012-12-14 19:09
골프 경력 20년에 핸디캡 이븐파 수준의 김모(55·자영업)씨는 지난 2∼3월 부산 영도구에 있는 실내 스크린골프장에서 두 달 동안 내기골프를 했다가 정모(44)씨 등에게 1억5200만원을 잃었다.
판돈이 타당 10만∼100만원이고, 한 라운드에 최고 4000만원까지 잃을 수 있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김씨는 자신이 있었다. 직전에 정씨 등과 타당 1만∼2만원의 내기골프를 해 수십만원을 딴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평소와 달리 페어웨이에서 고전했고, 1∼2번이면 충분했던 퍼팅도 3∼4번씩 하는 바람에 큰돈을 잃었다. 나중에 사기골프에 놀아났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스크린골프장에서 내기골프를 제안한 뒤 리모컨으로 티샷 방향과 비거리 등을 조작해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기단이 적발됐다.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스크린골프 사기도박’의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부산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조호경)는 14일 스크린골프 사기단 14명을 적발해 주범 강모(54), 정모(44)씨와 사기도박 기술자 허모(68)씨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 또 공범 박모(51)씨 등 6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3명을 수배했다고 밝혔다.
강씨 등은 지난해 3∼9월 강씨가 운영하는 부산 금정구의 한 스크린골프장에서 회사원 박모(48)씨와 타당 5만∼300만원을 걸고 내기골프를 해 1억82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지난 2∼3월 영도구 스크린골프장에서 자영업자 김씨로부터 1억5200만원을 가로챈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피해자가 에이밍(목표 조준)에 이어 백스윙할 때 리모컨으로 화면을 조작해 채를 바꿔놓거나 티샷 및 퍼팅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고수’들도 이 같은 수법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강씨는 사기골프를 위해 공학석사인 허씨와 허씨의 아들(39·IT회사 직원)까지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의뢰해 화면을 조작해도 소리가 나지 않는 리모컨과 컴퓨터 삽입용 무선수신장치(USB)를 개발해 사용했다. 리모컨은 크기가 작아 호주머니 속에 숨겨서 조작할 수 있고 버튼을 눌러도 소리가 나지 않는 신개발품이었다.
강씨 등은 처음에는 일부러 상당한 돈을 잃어 줘 자신감을 갖게 한 뒤 나중에 판돈을 올리는 수법으로 범행대상을 끌어들였다.
검찰은 강씨 일당이 자체 제작한 특수 리모컨 20여개를 개당 100만∼400만원을 받고 시중에 유통한 것으로 보고 비슷한 수법에 당한 피해자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