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청량리 588
입력 2012-12-14 18:39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부인(춘희)’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매춘부다. 그녀는 한 달 중 25일은 흰 동백꽃, 나머지 5일은 빨간 동백꽃을 가슴에 꽂고 극장이나 사교계에 나타나고 몸을 팔아 귀부인처럼 생활한다. 베르디에 의해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로 작곡돼 더 유명해진 이 작품은 파리의 고급 매춘부 마리 뒤프레시를 모델로 삼았다. 뒤마는 마리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하다 헤어졌고, 폐병을 앓던 그녀가 죽은 뒤 소설을 썼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여주인공 쏘냐도 매춘부다. 계모와 동생들을 위해 몸을 팔지만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로 구원을 상징한다. 그러나 대학시절 청량리 588이나 미아리 텍사스, 용산역 주변을 지나다 마주친 매춘부들의 모습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않았다. 붉은 조명이 깔린 쇼윈도에 진한 화장을 하고 반라(半裸)의 속옷 차림으로 늘어서서 호객행위를 하는 그녀들 모습은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집창촌은 일본식 유곽(遊廓)에서 유래했다. 유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5년 사창이 일반 주거지역으로 침투·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사카의 게이세이초를 공인한 것이 시초다. 우리나라는 기생이 있었지만 돈을 위해 몸을 팔지는 않았다.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후 개항지에 일본 유녀(遊女)들이 들어와 은밀히 영업을 하다 1902년 부산의 일본인 거류지역에 산재한 ‘특별요리점’이라는 성매매 업체들을 모아 유곽을 만들었다.
집창촌 대명사인 청량리 588은 6·25전쟁 때 경원선 종점인 청량리역에서 강원도 철원·화천·양구 등 동부전선 격전지로 군인들을 실어나르면서 군인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들이 몰려 생겨났다. 명칭은 전농동 588번지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588번 버스가 이곳을 지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서울시가 최근 청량리 588 재개발 계획을 승인하면서 50여곳 남은 집창촌이 완전히 철거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범죄가 오히려 늘었고, 성매매 종사자들의 생계를 위해 ‘제한적 공창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性)을 사랑의 행위가 아닌 돈으로 거래하는 치욕스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