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넘은 그가, 장애인 위해 뛰다… 의족 스프린터 피스토리우스, 경주마와 대결

입력 2012-12-14 18:40


출발 신호가 울렸다.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6·남아프리카공화국)가 스타팅 블록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400m 레이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토종 아랍 경주마 ‘마세라티’였다. 15m 뒤에서 출발한 마세라티는 ‘이상한 대결’에 당황한 듯했다. 기수가 채찍을 휘두르자 허둥대며 시간을 까먹었다. 그 사이 피스토리우스는 야생마처럼 트랙을 내달렸다. 마세라티는 뒤늦게 피스토리우스를 맹렬히 추격했지만 결국 따라잡지 못했다.

피스토리우스는 13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아스파이어존에서 경주마와 이색 대결을 벌였다. 애초 승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열린 이벤트였으니까.

레이스를 마친 피스토리우스는 누가 이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장애인들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어요. 오늘 밤 우리 모두 즐거운 경험을 했고, 이 행사가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데 도움이 됐기를 바랍니다.”

피스토리우스는 정강이뼈가 없는 채 태어나 한 살 때 무릎 아래를 절단했다. 철제 의족을 사용해 걷는 법을 배운 그는 네발자전거와 수상스키를 즐길 정도로 도전 정신이 강했다. 럭비를 하다 다친 뒤 육상으로 전향한 그는 칼날처럼 생긴 탄소섬유 재질 의족을 달고 경기에 나서서 ‘블레이드 러너’라는 애칭을 얻었다.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서 단거리 최강자로 군림한 피스토리우스는 절단장애 육상 선수로는 처음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뤄 당당히 400m 준결승에 진출했고, 1600m 계주 결승에서 남아공의 마지막 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어 런던 패럴림픽에선 금메달 2개(400m·1600m 계주), 은메달 1개(200m)를 목에 걸었다.

‘강한 열망 속에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설 자리를 잃는다.’ 피스토리우스의 인생철학이다. 열망이 있었기에 그는 휠체어 대신 의족을 선택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달렸다. 수많은 사람에게 꿈을 나눠준 그는 이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앞으로 5년 더 현역으로 뛴 뒤 지뢰 희생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어요.”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