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보다 청렴한가] 公職, 여자가 많아지면 깨끗!… 뇌물이 性차별하는 것 봤나?

입력 2012-12-14 21:11


부패의 ‘남녀 유별학’

1998년 8월 멕시코 경찰당국은 흥미로운 실험을 단행했다. 툭하면 뇌물을 챙기는 교통경찰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여성들로만 교통경찰대를 신설한 것. 또 남성 경찰관의 법규위반 범칙금 부과권한을 박탈하고 여성에게만 이를 부여했다. 5개월 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뇌물을 받아 처벌을 받은 여성 경찰관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멕시코가 효과를 거두자 페루 역시 비슷한 실험을 이어갔다. 여성 경찰관 수를 대폭 늘린 것이다. 여성학으로 유명한 미국 에모리대의 사브리나 카림 정치학과 교수는 페루의 실험을 10년 동안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즉 페루 국민 86%가 여성 경찰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됐으며 95%의 국민은 여성 경찰로 인해 부패문제가 줄어들었다고 대답했다. 67%는 여성 경찰이 남성보다 부패하지 않았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페루 당국은 최근까지 2500명의 여성 경찰을 채용했다.

양국의 실험에서 보듯 부패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을 중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청렴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남성이 들으면 기가 막혀할 이 같은 정책은 논란을 불러왔다. 로이터 통신이 지난 4일 “여성지도자는 덜 부패했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해묵은 논쟁이 다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청렴하다?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지난 5월 14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분 2 이상의 응답자가 범세계적으로 부패가 만연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은행이 올해 발간한 ‘세계개발보고서(WDR)’는 눈길이 간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에서 여성 지도자가 있는 마을은 남성이 이끄는 마을보다 뇌물수수가 2.7∼3.2% 포인트 적다는 것이다. 여성의 청렴도가 남성보다 뛰어나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보고서다.

앞서 세계은행은 2001년 3월 ‘권리, 자원, 목소리의 성 평등을 통한 성 인지적 발전’이라는 보고서에서도 정치 및 공공분야의 여성 종사자가 남성에 비해 부패정도가 낮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국내 연구 역시 비슷해 여성의 경제·사회·정치 참여율과 국가투명성 간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2002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정치 및 사회참가율이 10% 포인트 증가하면 세계은행이 개발한 부패인지지수(TI)가 1.2포인트, KKZ청렴지수가 0.25포인트 높아진다고 한다.

세계은행이 분석한 여성의 청렴성은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대체로 남성보다 도덕관념이 높고 위험을 감수하기 싫어하는 경향 때문이라는 것이다. 1975∼1978년 이란 여성부 장관을 지낸 마나즈 아프카미 여성개발연구원장은 “여성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정부의 질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청렴하다는 얘기다.

부패에는 성별 구분 없다

여성이 남성보다 깨끗하다는 주장은 선입견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인도네시아의 첫 여성 재무장관을 지낸 스리 물랴니 인드라와티 세계은행 집행이사는 여성의 공직 참여가 풀뿌리 정치수준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인정한다.

하지만 국가 수준에서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면서 공직사회를 청렴하게 만든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자카르타에서 열린 부패근절 세미나에서 여성지위향상재단의 아니 위드야니 연구원은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와 부패감소에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학술적 연구가 없다”며 “부패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2008년 인도네시아에서 여성 기업가가 검사에게 뇌물을 줘 기소됐던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또 2004년 인도네시아 부은행장 선거에서 한 여성 기업가가 국회의원에게 여행자수표를 건넸다가 적발됐던 사건도 언급했다.

국제의원연맹(IPU) 역시 전 세계적으로 입법기관 내 여성의 비율은 1987년 이후 배 이상 증가한 20.2%를 기록했지만 부패는 줄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즉 여성이 늘었다고 청렴도가 향상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여성이 남성보다 천성적으로 청렴하기보다는 여성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도 있다. 미 라이스대와 에모리대 연구진이 지난 8월 공동 연구한 ‘공정한 성인가, 순수의 신화인가?’라는 보고서는 남성 위주의 강력한 위계질서가 자리 잡은 독재정권에서는 여성 고위직이 늘어난다고 해도 부패에 대한 영향이 미미하다고 봤다. 이런 환경에서는 여성이 남성 후견인의 덕택으로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이 직위를 잃는 것을 두려워해 관습화된 부정부패에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히 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총리를 지낸 헬렌 클라크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는 “여성이 남성보다 부패하지 않다는 구체적 증거는 없다”며 “청렴성은 성별보다는 사회적 작동 방식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조직이나 개인에 따라 청렴도는 달라진다

성별에 따른 청렴도는 연구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직장인 대상 실험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윤리의식이 높게 나왔지만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상관관계가 발생하지 않기도 했다. 오히려 성별보다는 조직이나 개인에 따라 부패의 정도가 달라졌다.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부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1인당 국민소득이나 시민참여, 총인구, 국토면적, 기업규모, 인종의 다양성, 경쟁적인 정당의 존재, 여성의 공공부문 참여율 등이다.

이런 관점에서 공직부문에서 청렴하기로 소문난 국가가 스웨덴이나 덴마크, 핀란드다. 이들 국가는 국가투명성이나 국가경쟁력이 매우 높다.

올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덴마크와 핀란드는 100점 만점에 90점으로 공동 1위, 스웨덴은 88점으로 4위를 기록했다. CPI는 국제투명성기구가 1995년부터 부패 관련 문항자료를 표준화해 국가별로 지수화한 것으로 한 사회의 부패정도와 부패문제의 개선 정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 나라의 공통적인 특징은 여성 의원 참여율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국제투명성기구는 부패척결을 위한 해결책 중 하나로 공공부문에 여성공직자의 양적 확대를 권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경제적으로는 국내총생산(GDP)의 향상 역시 청렴도를 높이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국제투명성기구의 분석이 정답은 아니다. 그 예를 한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밝힌 한국의 올 부패인식지수(CPI)는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전체 176개국 중 4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43위에서 2계단 내려앉은 것이다. 한국이 8대 무역대국임에도 여전히 부패수준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남성이 더 부패하느냐, 아니면 여성이 덜 부패하느냐의 문제는 그 사회가 가진 문화나 각종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