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이지현] 울화병 다스리기
입력 2012-12-14 18:07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있다. 이때 쌓인 화를 삭이지 못하면 몸과 마음이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듯하며, 뜨거운 뭉치가 뱃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울화병의 증세이다.
혹시 ‘그 상황을 생각하면 몸이 불편해지거나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가?’ ‘그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예전과 똑같이 화가 치미는가?’ ‘그때 일어났던 일이 마음속에서 끝없이 되살아나는가?’ 이 세 가지 질문 중 하나에라도 고개를 끄덕였다면 울화가 당신의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에서 누락됐거나, 믿었던 친지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어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 처했거나, 자녀가 음주운전자의 자동차에 사고를 당했다면 당연히 울화가 치민다. 그러나 울화에 너무 많은 마음의 공간을 허락한다면 오히려 당신에게 상처를 준 대상에게 당신을 지배할 힘을 부여하는 셈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자신을 괴롭힌 사람을 미워하고 잃어버린 것을 한탄하는 데 정신이 쏠리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복한 일들을 놓칠 수 있다. 또 자신을 아껴주는 이들에게 감사하지도, 그들에게 관심도 갖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용서하면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고 말한다면 더 울화가 치밀어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용서의 의미를 알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용서는 부당한 일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용서란 개인적으로 공격받았다는 느낌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돈을 떼먹고 달아난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판단력이 흐려질 때가 있지만, 만일 그를 용서하면 자신을 얽매고 있던 감정의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다. 용서는 기억을 억제할 수 없지만 기억 속에 박혀있는 가시를 뽑아낼 수 있다.
그러나 용서하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다. 먼저 자신이 경험한 아픈 체험 하나하나가 얼마나 보편적인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그 어떤 일도 이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상황이 다르게 보인다. 또 나에게 가해진 공격 대부분이 나를 개인적으로 마음 상하게 할 의도가 없이 실행되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감정을 나눌 만한 친지 서너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용서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용서는 결단이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