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기권은 민의를 왜곡한다
입력 2012-12-14 18:32
세계 정치사에서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권력 가운데 최악은 독일 나치정권일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베르사유 체제 아래서 신음하던 독일 국민들은 제3제국 건설 망상에 사로잡힌 아돌프 히틀러를 지도자로 선택했다. 그가 정치적으로는 대립과 반목을 거듭하고, 경제적으로는 대량 실업과 살인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독일을 구원해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히틀러 집권 이후 경제는 호전됐고, 사회는 안정되는 듯 보였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 열광했다. 그러나 착시였다. 독일 국민이 느꼈던 안정은 히틀러의 획일화 정책이 강요한 ‘가짜’였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히틀러는 각종 긴급조치와 법률 개정을 통해 비판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그는 나치에 맞서는 어떠한 반대세력의 존재도 용인하지 않았다. 총살당하거나 수용소에 가지 않으려면 침묵하고 방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독일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는 ‘그들이 처음 왔을 때’란 시로 무저항, 방관, 침묵으로 나치에 굴종한 지식인의 비겁과 나약함을 한탄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를 잡아갔을 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그들이 사회민주주의자를 가두었을 때/나는 침묵했다/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그들이 노조원을 체포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나는 노조원이 아니었으니까/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갔을 때 나는 방관했다/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그들이 나를 잡아갔을 때는/항의할 수 있는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주면 18대 대통령이 선출된다. 그러나 이전 선거와 달리 선거전을 뜨겁게 달구는 핵심 쟁점이 없는 데다 공약도 비슷하고 지지율 1, 2위 후보 간의 양자 TV토론도 이루어지지 않은 때문인지 적잖은 유권자, 특히 아직 어느 후보를 찍을지 정하지 못한 부동층은 후보 비교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권표는 부동층에서 나온다. ‘누가 되든 나와 상관없다’는 판단에서 주권을 포기한다. 아무리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하더라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뽑아야 한다. 주권 포기는 민의를 왜곡시켜 차선도 아닌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치의 광기도 무관심과 방관에서 나왔다.
이번 선거에선 대선 사상 처음으로 재외국민투표도 함께 실시됐다. 산 넘고 물 건너 국경까지 넘는 2박3일의 장정 끝에 한 표를 행사한 조지아(옛 그루지야) 교민들, 2000㎞가 넘는 거리를 버스로 40시간 달려 투표한 인도 교민, 산소호흡기와 휠체어의 도움을 받아 투표소에 온 미국 로스앤젤레스 교민, 교통비와 식대로 2주일치 생활비를 써가며 투표했다는 신혼부부 등 인터넷엔 감동적인 투표참여기로 넘쳐난다. 이런 게 나라사랑이다.
이런 ‘아름다운’ 해외 거주 국민들의 투표 열풍(투표율 71.2%)은 4·11총선 때 저조한 투표율(45.7%)로 일었던 재외국민투표 무용론을 잠재웠다. 이제 국내 거주 유권자들이 화답할 차례다. 지난 17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63.0%에 그쳤다. 14대(1992년) 81.9%, 15대(1997년) 80.7%, 16대(2002년) 70.8% 등 대선 투표율은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번 선거 투표율이 17대보다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9.9%가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응답했다. 17대 대선 당시 같은 기간에 실시한 조사 때의 67.0%에 비해 12.9% 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힘은 참여에서 나온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