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24) 음악] 아침에 가야금 줄을 맸다

입력 2012-12-14 18:32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진다.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 매년 이맘때면 일어나는 풍경이다. 음악이나 노래는 마음을 순화시키거나 집단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유용한 수단이다. 우리는 물론이고 선조들도 음악과 노래를 즐겼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는 우리 민족의 특징으로 노래와 춤을 들 정도였다. 민족 DNA이다.

“저녁에 피리를 불고 노래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1594년 8월 20일) “밤이 깊은데 해(海)의 피리 소리와 영수의 거문고 타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수사와 조용히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1594년 6월 9일) “여러 장수들과 함께 가야금 몇 곡조를 들었다.”(1596년 2월 5일) “아침에 새로 만든 가야금에 줄을 맸다.”(1596년 3월 19일)

전쟁 영웅 이순신이 음악을 듣고 스스로 노래를 불렀다는 ‘난중일기’의 기록이다. 이순신은 다산 정약용이 “음악은 마음을 평화롭게 해 덕을 기르는 것”이라고 했던 것처럼 음악으로 자신을 다스린 것이다. 특히 일기에는 거문고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거문고를 위엄과 기품이 있고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악기, 선비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악기라고 생각했다. 거문고는 작은 방에서 소수 혹은 홀로 듣는, 마음의 귀로 듣는 음악이다. 이는 일반 백성들의 농악·판소리·산조·민요와 같은 광장 음악, 공동체 음악, 자유로운 음악과 다른 것이다. 이순신이 남긴 기록처럼 거문고와 피리를 즐겨 연주하고 들었던 양반들의 기록은 아주 많다. 세조도 왕자 시절 가야금과 거문고, 피리를 배워 세종이 인정할 정도로 명인이었다. 심지어 그가 피리를 불었을 때는 학이 날아와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다른 선비들의 음악생활은 이순신과 처했던 환경이 아주 다르다. 그는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 백성들의 고통에 둘러싸여 있었다. 최고 리더로서 감당해야 할 지독한 고독을 인내하는 수단이 거문고였고 피리였다. “달빛이 비단결처럼 고와 바람도 파도를 일으키지 못했다. 해를 시켜 피리를 불게 했는데 밤이 깊어서야 그쳤다.”(1594년 8월 13일) 늦은 밤까지 온갖 번뇌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가슴에 치미는 온갖 아픔을 피리 소리로 씻어낸 것이다.

플라톤은 음악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오늘 하루 만이라도 우리 선비들이 추구했던 음악 정신으로, 이순신이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들었던 우리 음악을 듣고 연말연시의 분주한 마음을 가다듬자.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