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장외 증시 ‘프리보드’ 빈사 상태… 폐지론 고개

입력 2012-12-13 18:54


비상장 중소·벤처기업의 자금 조달 역할을 맡고 있는 ‘프리보드’가 식물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2005년 7월 장외 주식시장으로 출범했지만 하루 평균 거래대금이 고작 7000만원대에 그치며 존폐 기로에 섰다. 프리보드를 관리하는 금융투자협회 내부에서부터 “시장으로도 볼 수 없다”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방안으로 새로운 시장인 ‘코넥스(KONEX)’를 설립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12일까지 프리보드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1억원에도 못 미치는 7968만5552원으로 집계됐다. 벤처기업 자금 조달을 위한 자본시장이라는 취지가 무색한 거래 규모다. 같은 기간 코스닥 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은 프리보드의 1만8000배다.

기업들은 ‘식물’로 전락한 시장을 속속 떠나고 있다. 개설 당시 60개의 법인으로 출발해 2010년 말 71개 법인이 참여하기도 했던 프리보드에는 이제 52개 법인만 남아 있다. 지난 8월 말 1조450억원이던 시가총액은 3개월여 만인 12일 현재 5737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신용보증기금 조사연구부는 “프리보드에는 한국거래소 퇴출기업 등 부실기업이 섞여 있어 거래가 부진하고, 시장 기능이 위축됐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프리보드 활성화를 위해 거래세율과 매매방식 변경까지 검토했던 금투협조차 손을 놓으며 폐지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금투협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신설하려는 시장과 프리보드의 역할이 겹친다면 2개가 동시에 존재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시장 설립 취지나 내용이 같다면 지정된 기업을 이관하고 단계적으로 시장을 폐쇄해 투자자 혼란을 줄이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프리보드의 부진을 개선하기보다는 새 시장을 장내에 설립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서울 다동 예금보험공사 대강당에서 열린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 자금조달 제고 방안’ 세미나에서 “코넥스 설립을 조속히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코넥스는 프리보드의 단점들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기획되고 있다. 프리보드는 장외에서 1대 1의 상대매매 방식으로 주식을 사고판다. 따라서 적정한 가격을 형성하는 절차가 부족하다. 하지만 코넥스는 코스피·코스닥 등 장내 주식시장과 같은 경쟁매매 방식을 채택한다. 프리보드는 불공정거래 규제를 받지 않지만 코넥스는 거래소의 시장감시 시스템이 적용된다.

코스닥 시장과 연계되면서 시장 참여 기업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코넥스는 거래세율(0.3%)도 프리보드(0.5%)보다 낮다. 프리보드의 폐지론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반면 섣불리 폐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엄경식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프리보드 고유의 장외 주식시장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