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교도소교회 담임 김봉래 목사 “첫 감방예배때 너무 무서워 칼 품고 설교”
입력 2012-12-13 18:27
평생을 갇힌 자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목사가 있다. 1975년 교도관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평생 교회 하나 세우고 교역자가 되어 담 안의 형제들을 위해 일평생을 보내겠다”고 서원했다. 그리고 87년 전도사의 길을 걸으며 교도소 사역을 시작했다. 25년을 수용자들의 아버지로, 교정 선교의 산증인으로 살아온 김봉래(64) 목사 얘기다.
97년에는 전국 교정기관 중 유일하게 홍성교도소 내에 ‘경비교도대교회’를 건립하는 데 앞장섰다. 또 브니엘성경대학을 개설해 많은 경비교도대원들을 신앙의 역군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했다. 교도소 내에 ‘가족 만남의 집’을 건축, 수많은 수용자들이 가족과의 만남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2005년 정년퇴임한 뒤 현재까지는 이름을 바꾼 홍성교도소교회의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제 교도소 사역의 동력은 후원자들입니다. 경비교도대교회나 가족 만남의 집 모두 후원자들의 성금으로 신축했습니다. 무일푼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께 매달리는 믿음 하나로 기적 같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교회 건축을 위해 5년 동안 기도한 뒤 가수 싸이 아버님의 후원으로 교회를 건립했습니다.”
김 목사는 또 ‘교도소신우회’를 조직하고 수용자들은 위한 감방 예배를 시작했다. 처음 감방 예배를 드릴 때는 두려움에 칼을 품고 들어갔다. 혹시 자신을 인질로 잡으면 자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네 양이 너를 물겠느냐 두려워 말라”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때부터 두려움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됐다.
경교대교회를 시작하며 교도소 경비 임무를 맡은 경비교도대원들을 위해 개설한 1년 과정의 브니엘성경대학은 15년 동안 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성경대학을 통해 신앙을 가진 대원들은 깊은 신앙심과 비전을 얻었고 믿지 않던 대원들은 예수를 믿는 일들이 일어났다. 경비교도대가 폐지된 뒤에는 서울신대와 협약을 맺고 수용자들에게 2년 과정으로 통신수업을 하고 있다.
30년간 교도관으로 헌신하며 건강을 해친 김 목사는 퇴직한 뒤 3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종합병원이라고 말할 정도로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등으로 언제 심장이 멈출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건강을 주셔서 출소자들의 자립을 위해 퇴직 전부터 구상해온 김치공장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
“출소자들의 재범을 낮추려면 자립할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김치공장이 세워져 아름다운 삶으로 갱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재정이 허락되지 않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