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가해 학생이 사람답게 사는 길

입력 2012-12-13 18:18


동료 중에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을 둔 엄마가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사는 딸 덕분에 늘 폭풍전야라고 걱정을 달고 살더니,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제3자인 내가 다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엄마인 그 친구 심정은 어떨 것이고, 당사자인 아이의 마음은 어떨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어느 학교에서 왕따에 시달리던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 학생들의 부모가 학교로 불려가 한곳에 모인다. 그들은 시종일관 자기 아이의 행위를 부정하고 덮으려고 애쓴다. 교사는 학교의 명예를 위해 이에 동조한다. 결국 그들은 피해자인 죽은 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린 살아야 하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교사였던 하타사와 세이고가 쓴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줄거리다. 2006년 규슈에서 있었던 중학생의 자살사건이 이야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한 학생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반성도 하지 않는 가해 학생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이 생각났다. 가해 학생들은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그 부모와 학교는 손해배상 처분을 받았다. 재판기간 동안 가해 학생의 부모는 피해 학생의 부모에게 감형을 졸라댔다. 학교는 죽은 아이에게 ‘자살고위험군’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책임을 회피했다. 가해 학생들은 그저 장난이었을 뿐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일부 교육청이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문제로 교육과학기술부와 갈등 중이라고 한다. 대입 정시 모집을 앞두고 불거진 일이라 가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곧이들리지 않는다. 학교 폭력의 참혹한 결과를 보고도 대학이 먼저인가.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맞다. 그러나 폭력의 기록을 지우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한들 잘 살까.

인권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진정으로 가해 학생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그 아이가 앞으로의 날들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학교폭력의 가해 학생이 사람답게 사는 길의 시작은 진심으로 뉘우쳐서 용서받는 데 있다. 힘들고 괴롭다고 피해갈 길을 내어주면 안 된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