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황태순] 깜깜이 선거와 자유의지

입력 2012-12-13 18:40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 번역하면 ‘전지전능한 브루스’ 정도가 된다. 2003년 짐 캐리가 주연한 코미디 영화다. 매사에 불만이고 투덜대는 브루스에게 창조주는 일주일 동안 전지전능한 신의 권능을 빌려준다. 브루스는 신의 능력을 발휘해 사랑이 식어가는 여자 친구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통하질 않는다. 그러자 창조주는 “아무리 신이라도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어찌 하지는 못한다”고 가르친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참고하는 과학적인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도 상당수 유권자들은 이를 자기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농후하다.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에게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묻는 격이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로 가는 길을 찾는 도구일 뿐인데 말이다.

어제부터 여론조사결과 공표가 금지됐다. 물론 12일까지 조사한 결과는 계속 인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새로운 여론흐름에 대해서 일반 유권자들로서는 달리 알 길이 없다. 흔히 ‘깜깜이 선거’로 불리는 기간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둠에 불안을 느낀다. 불안한 마음은 때때로 막연한 공포심으로 변질돼서 이상행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공허한 공간에는 사악한 기운이 스며들기 십상이다.

선거기간 유권자들의 행태를 살펴보면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누가 뭐래도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소신파다. 이른바 ‘묻지 마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유형이다. 둘째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부동층(浮動層)이다. 그런데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바로 부동층이다. 특히 깜깜이 선거기간으로 접어들면 부동층들은 정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좌고우면하는 경향이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후보자의 입장에서는 부동층의 마음을 잡는 데 사력을 다한다. 이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불법 네거티브, 즉 유언비어와 흑색선전 그리고 중상모략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폭로와 비방이 난무한다. 먼저 무조건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또 이를 그럴듯하게 부풀린다. 사실과 진실은 온데간데없고 남는 것은 불신과 헷갈림뿐이다. 가뜩이나 심약한 부동층 유권자들은 바람 앞의 갈대같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마련이다.

역대 선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예외가 없다. 북풍이 등장해 안보불안감을 부채질했다. 망국적 지역감정을 악용한 사례는 허다하다. 관권선거 의혹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후보자나 가족에 대한 덮어씌우기는 예사다. 대표적 사례가 2002년 대선에서 김대업의 이회창 후보를 모략한 조작 증언(김대업은 거짓이 밝혀져 감옥에 갔다)이다. 의심을 받은 당사자는 가슴을 뜯고 의혹을 제기한 측은 히죽 웃고는 그만이다. 나중에 속았다고 땅을 치는 것은 다름 아닌 유권자들이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제 북한은 ICBM급 로켓발사에 성공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도 있는 사태에 대한 냉철하고도 긴 안목의 대처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진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멋대로 나팔을 불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이 특정 후보에 대해 비방 댓글을 달아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여야 그리고 국정원까지 뒤엉켜 사생결단의 머리끄덩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투표는 국민 개개인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다. ‘묻지 마 투표’도 ‘이리저리 눈치투표’도 민주주의를 좀먹고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암적 존재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유권자다. 후보자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는지,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며 살아왔는지, 국가경영을 담당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 그리고 함께할 참모들은 어떤지를 꼼꼼하게 점검해야만 한다. 유권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의지를 실천으로 옮길 때 선거도 본래의 의미를 지킬 수 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