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잡히는 책] 구제의 주역으로 돌아온 ‘뒷골목 소녀’…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

입력 2012-12-13 18:36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리즈 머리 (다산책방·1만5800원)

“아빠가 나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교도소의 면회 유리창 너머에서였다.” 이 첫 문장에서부터 최초의 기억에 접근하려는 소녀의 열망과 비범함이 느껴진다. 부모는 지독한 마약중독자였다. 엄마는 매춘을 했고 아빠는 쓰레기통을 뒤졌다. 거리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소녀는 굶주린 나머지 도둑질을 했고 지하철역과 건물 층계참에서 새우잠을 잤다. 소녀에게 세상이란 나를 거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거대한 벽’과 같았다.

이 자전적 기록은 미국 빈민가 출신의 소녀 리즈 머리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벽을 깨뜨리고 뉴욕타임스 장학생으로 하버드대에 입학하기까지, 그리고 졸업 후 미국 전역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매니페스트 리빙’을 설립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한 필치로 보여준다.

장학금 수혜자 선발을 위한 뉴욕타임스 면접이 끝났을 때 소녀는 자신 안에 무엇인가가 꿈틀거렸다고 고백한다. “나는 내 안의 트랙 주자가 전속력으로 뛰어올라 허들 하나를 더 넘는 것을 보았다.”(464쪽) 그녀의 말처럼 인생은 허들의 연속이다. 그녀의 앞에는 아직 넘어야 할 허들이 수없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그 허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정해영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