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다수결 선거제 발전 뒤엔 수학자의 땀이 있다… ‘대통령을 위한 수학’

입력 2012-12-13 18:36


대통령을 위한 수학/조지 슈피로/살림

대한민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후보 단일화가 최대 이슈였다. 상당한 지지를 받았던 대선 후보를 본선에 배제시키는 이 방식이 최적의 대통령 선출 방식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면서 한 진보학자는 프랑스식 결선 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프랑스의 선거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프랑스 수학자 미첼 밸린스키와 리다 라라키는 이마저도 완벽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이 제안한 ‘자질 평가 방식’은 지금처럼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에 인장을 찍는 게 아니다. 대신, 경선에 나선 모든 후보를 상대로 한 자질 평가에서 각 후보마다 ‘매우 좋음’ ‘좋음’ ‘괜찮음’ ‘거부’의 4등급 중 하나를 부여토록 하는 것이다. 가장 많은 점수를 딴, 즉 가장 자질이 좋다고 평가받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은 2007년 초, 프랑스 대선에서 이 방식을 시험했다. 당시 결선에선 우파 성향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53%의 득표율로 사회당 후보 세골렌 루아얄을 제치고 당선됐다. 두 수학자는 3개 투표소를 선정해 투표자들로 하여금 경선에 나섰던 전체 후보를 대상으로 4등급 중 하나를 매기게 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점수를 받은 이는 뜻밖에도 3위로 탈락한 중도파 후보 프랑수아 바이루였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하지만 어느 선거제도도 100%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결함을 가진 불완전한 제도일 뿐이다. 그런데 선거제도가 가진 맹점은 수학자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스위스의 수학자 출신 대중저술가인 조시 슈피로가 쓴 이 책은 무엇보다 다수결의 함정에 빠진, 미완의 민주주의를 개선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던 수학자들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야기는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중우정치를 혐오해 민주주의를 경계했던 철학자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그의 뜻과 달리 아테네에서 민주정치가 시작된 이래 많은 수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민의를 폭넓게 반영해 적합한 인물을 리더로 선출할 수 있는가에 골몰했다. 다수결이 신의 뜻을 밝혀준다고 믿었던 중세의 철학자 라몬 유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18세기 계몽시대로 접어들면서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수결 원칙은 일대 도전을 받으며 선거제도가 도약하는 전기를 맞는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혁명기 귀족 출신 수학자 장-마리 마르키 드 콩도르세의 이름을 딴 ‘콩도르세의 역설’이다. 예컨대 A, B, C 3명의 후보가 있을 때 A를 B보다 선호하고(A>B), B를 C보다 선호할 경우(B>C), A를 C보다 좋아해야 한다(A>C). 하지만 최다득표제 하에서는 이에 위배되는 결과(C>A)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콩도르세의 역설은 어떤 순서에 따라 투표하는가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다수결 원칙은 2명의 후보가 출마했을 때만 옳으며 3명 이상이 출마하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콩도르세는 다수결의 맹점을 줄이고 투표자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양자 대결 방식을 제안했다. 즉 모든 후보자를 2명씩 짝을 지워 비교하고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게 한 뒤, 후보자들의 순위를 도출하고 그중 가장 순위가 높은 후보가 유권자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후보자가 너무 많으면 양자 대결을 하는 데 지나치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맹점이 있다.

20세기 들어 197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는 다수결 투표로는 개인의 선호도를 사회 전체의 선호도로 종합해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른바 ‘애로의 불가능성의 정리’다.

어쨌건 수학자들은 콩도르세의 역설을 발견한 이후 투표제도를 연구하고 새로운 방안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현재 다수결 원칙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시행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에 쓰이는 승인투표방식도 그중 하나다. 승인투표방식은 유권자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후보의 이름을 복수로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는 이 방식은 ‘죽은 표’를 방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승인투표방식이 실시됐더라면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 지지자들은 민주당 앨 고어 후보에게도 표를 던졌을 것이다. 당시 대선에서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가 아닌 고어가 당선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책 제목은 대통령을 위한 수학인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가며 바꿔가야 할 미완의 제도임을, 그래서 유권자를 위한 수학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닐까. 차백만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