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도 블랙컨슈머 골머리… “추천종목 잘못 작성했으니 손실 책임져라” 협박
입력 2012-12-12 19:17
A증권사 지점 영업사원 이모씨는 매일 아침 익숙한 번호와 함께 휴대전화가 울릴 때면 배가 아파온다. 전화를 받으면 총 4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투자자가 “추천종목을 잘못 작성한 증권사에도 절반의 책임이 있으니 200만원을 입금하라”고 소리를 지른다. 이씨는 “고객의 손실에 가슴이 아프지만 최종 판단은 본인 몫인데 욕설까지 하면 정말 힘들다”고 호소했다.
B증권사 지점에서 일하는 신입사원 김모씨의 임무는 ‘전담 마크’다. 상담 명목으로 매일같이 지점에 방문해 사은품을 요구하는 한 50대 남성을 달래는 일이다. 김씨는 “사은품이 없다고 하면 ‘금융감독원에 불친절 민원을 넣겠다’고 횡포를 부려대는 통에 현금을 쥐어주고 돌려보낸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악성 민원에 일일이 서면 답변해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서는 업무방해를 겪기보다 차라리 현금을 주고 입막음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김씨는 전했다.
중소형사 10곳에 20만원씩 계좌를 개설해 두고 하루에 1주만 매매하는 한 30대 남성도 업계에선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이 남성은 매매를 마친 뒤 10개 증권사 고객센터에 번갈아 전화를 걸어 “C증권사의 HTS(홈트레이딩시스템) 메뉴에는 이런 기능이 없느냐”, “D증권사의 HTS는 E증권사보다 왜 늦게 작동되느냐”는 식으로 시비를 건다. 오랜 시간 시달린 한 직원이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자 이 남성은 “주유권을 주면 전화를 그만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금융투자업계도 ‘블랙컨슈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독한 불황을 겪은 올해에는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이 크게 늘고 있다. 증시침체 등 금융시장 불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콜센터 직원은 “전화를 걸어와 한 시간 동안 눈물만 흘리던 고객도 있다”며 “어서 증시가 살아났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금감원이 기각한 민원을 갖고 협박하는 고객을 접하면 짜증도 난다”며 “서비스업의 특성상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응지침이나 통계가 따로 없는데, 앞으로는 제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