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같은 사막 난민촌… 그곳에 웃음은 없었다
입력 2012-12-12 19:03
국민일보-월드디아코니아 요르단 국경 시리아 난민촌을 가다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요르단의 자타리마을 난민촌. 지난 10일 해외재난구호 전문기구 월드디아코니아(이사장 오정현 목사)와 함께 찾은 이곳에는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시리아 난민 4만6000여명이 6000여동의 텐트에 살고 있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 배우 안젤리나 졸리 등이 최근 방문해 국제적 관심을 받았지만 열악한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리아는 지난해 1월부터 2년째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군과 정부군이 격렬한 내전을 벌이며 4만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다.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약 80㎞ 떨어진 이곳 난민촌은 사막 한 가운데 마치 ‘포로수용소’처럼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무장한 요르단 군인들은 장갑차까지 동원해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고, 정문에서 입구까지 가려면 세 차례 검문을 거쳐야 했다.
입구에는 10여명의 시리아인이 난민촌에 출입하기 위한 수속을 밟고 있었다. 낡고 해진 겉옷에 수염도 제대로 깎지 않은 얼굴, 어두운 시선의 그들은 지쳐보였다. 해가 지지 않은 오후 4시였는데도 찬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했다. 흙먼지가 일어 신발이 금세 더러워졌다.
난민촌 입구 안쪽으로는 컨테이너형 조립식 건물이 늘어서 있었고 그 뒤로는 모로코 터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중동과 유럽 국가들의 국기가 보였다. 이들 국가가 운영하는 야전병원과 학교들이었다. 힘없이 햇볕을 쬐며 앉아있는 어른들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아이들은 웃음을 가득 띤 채 인사를 건넸다.
조립식 건물들을 지나자 하얀색 대형 텐트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난민촌 관계자는 “난민촌 크기는 가로, 세로 2㎞ 정도”라고 설명했다. 텐트 사이로 화장실과 급수시설이 보였다. 화장실은 불결했고 절반 정도는 문이 없었다. 급히 만든 탓에 바닥의 수평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이곳 난민촌은 요르단의 자선단체인 요르단하심자선기구(JHCO)가 관리하고 운영하는데 짧은 시간에 난민들이 급증한 탓에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
JHCO 직원의 소개로 자타리 난민촌 마흐무드 이스파타디(32)씨 가족의 텐트에 들어섰다. 17.5㎡(5평) 남짓한 텐트 안에서는 이스파타디씨 가족과 동생의 가족 등 13명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구운 빵인 ‘코브즈’와 콩요리 ‘후울’, 채소볶음 ‘음냐잔떼’가 준비한 음식의 전부였다.
시리아 다라 지역 출신인 이스파타디씨는 2만여㎡ 정도의 밭에서 토마토와 가지, 상추 등을 재배하는 농부였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으로 집이 전소해 대가족을 이끌고 도망치듯 국경을 넘었다. 국경에서는 정부군의 총격과 요르단군의 엄호사격을 동시에 받았다. 고막을 찢을 듯한 총성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귀마개를 씌웠지만 몇몇 아이들은 지금도 총소리를 잊지 못했다.
이스파타디씨의 아내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고통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내전이 끝나 고국에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난민촌에서 주 2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스위스인 크리스토퍼 헤프티(37)씨는 “내전과 탈출 과정에서 충격을 받은 아이들이 많다”며 “시리아인들은 정신과적인 도움과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하지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해서는 반드시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 날 방문한 요르단의 또 다른 국경도시 마프락의 난민들 상황은 더 힘겨웠다. 지난달 20일 요르단에 왔다는 아딸라 칼라디(28)씨는 아내, 네 자녀와 함께 작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시리아 홈스 출신인 칼라디씨 역시 폭격으로 집을 잃은 뒤 국경을 넘었다. 처음에는 난민촌에 머물렀지만 아이들을 괴롭히는 추위를 피해 떠났다. 난민촌을 떠나려는 이들에게 요르단 정부가 요구하는 요르단 주민의 신원보증을 어렵게 얻을 수 있었던 덕택이다.
칼라디씨의 아내는 “지난주에만 20일된 신생아를 포함해 5명의 아이들이 세상을 떠났다”며 “난민촌에서는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칼라디씨는 “이달까지 120디나르(약 15만원)의 월세를 내지 못하면 다시 거리로 나앉아야 한다”며 “일을 해야 하는데 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르단 현지 선교사들은 요르단의 부유층이 시리아인을 상대로 ‘난민 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60∼70디나르(약 8∼10만원)였던 33㎡(10평) 규모 주택의 월세는 1년 만에 120∼150디나르(약 15∼17만원)로 2배 이상 상승했다. 유류비와 각종 식자재 등 생활 물가도 폭등해 요르단 내에서는 반난민 시위까지 일어나고 있다. 자타리에서는 광야의 모래바람과 한기가 난민들을 위협했다면, 마프락에서는 살인적 물가가 이들의 내일을 앗아가고 있는 셈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11일 현재 요르단에 난민으로 등록하거나 등록할 예정인 시리아인은 모두 14만3697명이다. 터키와 레바논 등 다른 나라까지 포함하면 전 세계적으로 51만1407명에 달한다. 요르단 현지 언론보도로는 현재 내전을 피해 요르단으로 건너 온 시리아 난민은 25만여명이다.
마프락 에티하드교회 누르 사와네(47) 목사는 “난민촌도 어렵지만, 국경도시에 살고 있는 시리아 난민들의 상황도 매우 열악하다”며 한국 사회와 교계의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했다.
마프락(요르단)=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