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정인] 실효성 상실한 교토의정서
입력 2012-12-12 22:06
“오아시스가 마르기 전에 인류는 공동의 지혜로 사막을 벗어나야 한다”
중동을 생각하면 우리는 사막, 오아시스, 그리고 뜨거운 태양을 연상하게 된다. 중동 국가 중에서도 세계무역 협상으로 잘 알려진 카타르 도하에서 이번에는 기후변화에 대한 협상이 약 열흘간 개최됐다. 18차 세계 기후변화총회(COP18)로 불린다. 이번 회의의 중요한 의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의 의무기간(2008∼2012년)이 만료됨에 따라 계속 연장해 갈 것인지의 결정, 둘째는 2020년까지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약속한 재정 지원의 실질적 보장과 2015년까지의 긴급 자금 확보에 대한 약속 보장, 셋째는 일본 러시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과 같이 불참을 선언한 국가들을 계속 교토의정서에 남도록 설득하고, 좀 더 희망적이라면 미국이나 중국을 참여하게 하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협상의 결과는 아직도 세계는 사막 한 가운데 있으면서 저 멀리 오아시스만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사국들은 인천 송도에 유치키로 한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조속한 시일 내 운영될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GCF 간 법적·행정적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는 것이다. 2020년까지 교토의정서는 연장에 합의했지만 이른바 빅 4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은 교토의정서 게임에 가입하지 않거나 탈퇴했다. 유럽연합 중심의 유럽의정서로 전락한 느낌이다.
2020년까지 자발적으로 감축하겠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5% 정도만 의무적 감축 통제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0년 이전 감축분 상향 논의를 위해 2015년 5월까지 협상문안 초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사국들은 2013년 3월 1일까지 신(新)기후체제에 적용될 원칙, 법적 형태, 온실가스 감축 형태 등 주요 요소들에 대한 국가별 제안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2020년 이후 광범위한 국가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체제를 마련하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플랫폼’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신기후체제를 위한 협상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고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 보상에 대한 제도를 만드는 것까지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개도국을 위한 보상의 기준, 보상의 범위, 보상액 등등 많은 제도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다.
게임을 하려는데 치러야 하는 판돈도 오리무중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재해가 속출하는 환경에서 더욱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도국들이 돈 달라고 아우성치는데도 선진국들은 ‘나 몰라’ 전술로 가고 있다. 개도국은 그동안 2010년에서 2012년까지 지급을 하겠다고 한 300억 달러의 지원금, 2020년까지 해마다 수백억 달러의 지원금 제공 등과 같은 자금 약속이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개도국 연합체인 77그룹과 중국은 선진국들의 모호한 장기 지원금 약속을 우선 2013∼2015년 동안 해마다 200억 달러의 중기 지원금 형태로 이행해 성의를 보일 것을 요구했지만 응답은 없었다.
이번 18차 당사국 총회는 교토의정서의 연장과 새로운 체계에 대한 합의, GCF 유치 인준 등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으나 재정 지원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빈껍데기뿐인 협상이었다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1997년 교토의 국제회의장은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계가 진정으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름다운 영혼과 의지가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협력의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실망과 분노, 불신만이 있는 협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우리가 사막에서 태양과 싸우고 있을 때 오아시스는 시간 앞에서 점점 없어지고 있다. 오아시스가 다 마르기 전에 인류는 공동의 지혜로 사막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김정인 중앙대 산업창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