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밴드왜건 효과
입력 2012-12-12 18:37
댄 라이스(1823∼1900)는 미국 남북전쟁 전후에 서커스단을 경영했다. 어릿광대로 시작해 단장이 됐다. 그는 대형 천막을 포장마차에 싣고 전국을 돌았다. 동물을 다루는 재주가 특별해 시간을 알아맞히는 돼지로 인기를 끌었다. 나중에 햄릿과 오셀로를 각색한 정치풍자극으로 돈을 벌었다.
당시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의 이름은 알았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의 찬사를 받았고 하원의원, 상원의원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말년에는 ‘엉클 샘’의 모델로도 이름을 날렸다. 지금도 엉클 샘 그림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길고 흰 턱수염이 빠지지 않는다.
라이스는 대중문화와 무관한 정치학을 공부할 때도 한번쯤 접하는 인물이다. 그는 서커스 천막을 친 뒤 단원들과 마을을 한바퀴 돌았다. 퍼레이드 맨 앞에는 악단(band)을 태운 마차(wagon)가 있었다. 밴드왜건이라는 말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후 밴드왜건은 곳곳에서 유행했다. 서부에 금광이 발견되면 광산업자는 도시에서 밴드왜건을 앞세워 광부들을 모았다. 선거에서도 필수 아이템이었다. 1890년부터 3년간의 경제공황 직후 대통령에 출마했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후보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을 도는 선거유세를 시작한 사람이다. 공황으로 은행 500여곳, 기업 1만5000여곳이 문을 닫았던 때였다. 그는 남부 농업지대 곳곳에서 요란한 음악소리로 청중을 모아 경제난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은 1950년 유행에 따라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밴드왜건 효과’라고 정의했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선거과정에서 어떤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지면 특별히 관심을 보이지 않았거나 반대하던 사람들이 덩달아 지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여론조사에서 지지도가 높게 나온 후보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투표하게 된다는 식이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 108조에는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오늘부터 유권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알 수 없게 된다. ‘깜깜이 선거’가 시작된 것이다. 입법 취지로 수많은 논리가 동원됐지만 골자는 밴드왜건 효과를 막자는 데 있다. 19세기 서커스단이 청중을 모아보겠다고 시작된 밴드왜건이다. 아직도 부작용 운운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유권자를 어린아이로 보는 격이다. 하루빨리 없애야 할 조항이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