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영숙 (11) “北어린이 영혼을 너에게 맡긴다” 주님 음성이

입력 2012-12-12 17:42


1989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소원대로 유아교육과 교수가 됐고 한국밀알기독교교육연구소(현 ㈔한국성품협회)를 설립해 교사들을 가르쳤다. 매주 토요일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교사 재교육을 실시했고, 국제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과정을 운영했으며 유아교육 기관장들을 위한 최고경영자과정을 진행했다.

2000년도부터는 연구소를 서울 단국대 안에 두고 특수교육지도자과정을 산하 협력 연구소로 지정받아 운영했다. 단국대학원 특수교육학과에서 정신지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지도하던 그해 6월 캐나다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오대원 목사님이 진행하는 ‘북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오라는 초청장이었다. ‘북한’이라는 단어가 눈에 크게 들어왔다.

예전에 혼자 기도하던 중 “북한 어린아이들의 영혼을 너에게 맡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에 거룩한 부담을 가졌었는데 편지를 받는 순간 다시 한번 감동이 일었다.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현실은 불가능했다. 학기 중에 자리를 비운다는 게 쉽지 않았다. 갈등 속에서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수원의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장 8절의 말씀이 내 머리에 울려퍼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수원IC를 빠져나와 한쪽에 차를 세우고 바로 응답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주변의 환경을 뒤로한 채 나는 캐나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북한을 섬기고 있는 많은 사역자들을 만났다.

특히 두란노선교센터 책임자인 김중원 목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북한 선교를 위한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김 목사님은 중국에서 사역했던 경험들을 통해 “선교란, 우리의 삶을 나누면서 같이 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나눌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교육을 통해 북한 어린이들을 도와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열매는 하나둘씩 맺어졌다. 김 목사님의 아내인 하신주 선교사님을 만나 중국 옌볜에 우리 연구소의 지원으로 ‘무지개 유치원’을 설립했다. 연구소는 몬테소리 교실 2개 반을 꾸며줬고 조선족 교사들에게 몬테소리 교육을 가르쳤다. 이를 위해 나는 2년 동안 중국을 오갔다. 또 한국의 열방대학팀이 우리 연구소를 찾아왔다. 캐나다에서 만난 열방대학 최전방 중보기도팀인 이태영 간사님이 내게 협력을 요청해왔다. 간사님은 “앞으로 북한에 문이 열리면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된 교사들을 먼저 보내야 한다”며 나에게 교사 양성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기독교 교사 선교대회를 열자고 했다. 한국예수전도단 대표인 홍성건 목사님이 교사들의 영성을 책임지고, 연구소 소장인 나는 교사의 전문성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정말 미래의 다음세대를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사역이었다.

2001년 1월 5일 수원 영통밀알유치원 강당에서 2박3일 일정으로 제1회 기독교 교사 선교대회를 개막했다. 이 선교대회를 통해 나는 교육의 전문성을 갖고 어떻게 영성으로 사역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4회 대회부터는 연구소 단독으로 진행했다. 겨울방학에만 개최했던 선교대회를 7회부터는 여름방학에도 제주 지역에서 실시함으로써 연 2회 교사들을 위한 집중적인 영성 수련회로 자리잡았다. 제23회 전국 기독교교사 선교대회는 오는 2013년 1월 3∼5일 열린다.

“네 성품을 고치고 성품을 가르치라.” 2005년 1월 광림수도원에서 열린 제17회 선교대회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이는 좋은나무성품학교가 세상에 드러나는 첫 출발이었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