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인간의 DNA”… 박맹호 민음사 출판그룹 회장, 팔순에 펴낸 자서전 제목은 ‘책’
입력 2012-12-11 19:50
‘책’. 5000종 이상의 책을 냈으나 팔순이 되어서야 겨우 자신의 첫 책을 냈다. 그 제목은 이렇게 간결하면서 외마디 외침처럼 강렬했다.
그는 대학 시절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을 탐독하던 문학도였다. “이런 책 쓰지 못할 바에야 이런 책 출판하는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해서 반세기 출판 외길을 걸어온 박맹호 민음사 출판그룹 회장이 11일 서울 무교동 한 음식점에서 자서전 출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평소에 비해 몇 배나 되는 취재진이 모였다. 후끈한 취재 열기가 그의 무게감을 대변했다. 박 회장 역시 “민음사의 궤적이 한국 출판의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역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자서전에는 1966년 민음사의 옥탑방 사무실에서 첫 책 ‘요가’가 탄생한 얘기에서 시작해 70년대 초 ‘세계 시인선’과 ‘오늘의 시인 총서’를 기획해 시집 붐을 일으킨 얘기, ‘오늘의 작가상’을 만들어 한수산 박영한 이문열 등 대형 신인을 발굴하고 이들 신진 작가의 책을 과감히 단행본으로 내면서 한국 문학 출판의 전범을 마련한 얘기 등이 나온다. 그는 또 ‘이데아 총서’ ‘대우 학술 총서’ 등으로 교재 수준에 머물렀던 인문학서 시장을 개척했다. 90년대 초에는 문인이나 교수가 아닌 편집부 직원을 주간으로 발탁, 전문 편집자 시대를 여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까짓 책들 파지로 갖다 팔면 몇 푼이나 나오겠냐!”
정미업 운수업 등으로 충북 보은 1위 납세자였던 부친은 사업을 물려받거나 정치하기를 바랐던 2남5녀의 장남이 책이나 만들어내는 게 못마땅했다. 그럴수록 자신은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자부심으로 출판에 매진했다고 회고했다.
출판시장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음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60년대 나온 ‘요가’가 1만5000부 팔려 베스트셀러였어요. 70년대 ‘별들의 고향’ ‘사람의 아들’ 등은 20만∼30만부 팔렸어요. 지금은 1000만부 등으로 베스트셀러 단위가 달라졌어요. 책은 인간의 DNA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출판시장에 후퇴는 없지요.”
간담회에는 민음사 편집장 출신으로 박 회장을 만나 북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정병규씨가 함께했다. 자서전 ‘책’의 표지 디자인도 그의 작품이다. 정씨는 “회장님의 신뢰가 없었다면 북 디자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쉼 없이 달려왔으니 쉬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일을 쉰다는 건 내겐 고문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하고 싶은 게 더 있다면? 그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 한때는 100권 돌파가 꿈이었지만 어느새 306권까지 나왔다. 1000권까지 가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민음사는 현재 비룡소, 황금가지, 민음인, 세미콜론, 반비 등을 거느린 출판 그룹으로 성장했고 아들 박상준, 딸 박상희, 며느리 김세희 대표가 분할해서 이끌고 있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은 450억원에 달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