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석] 대통령후보 경제토론 유감
입력 2012-12-11 18:42
토론 주제가 경제와 복지 문제여서 그랬는지 역시 그랬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보다 무엇을 해주겠다는 내용만 무성했다. 원하는 것을 다 해주겠다는 것은 정책도 아니고 공약도 아니다.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무슨 공약이고 비전인가? 왜 그렇게 안됐는지를 놓고 토론했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어떤 제약이 있는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법으로 금지하면 비정규직이 없어질까?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없애는 것이 아닐까? 근로시간 축소로 일자리를 만든다면 그만큼 임금 감소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조세감면축소와 예산절약으로 복지재원을 마련하겠다는데, 누구 예산을 깎고 어떤 감면대상을 축소하겠다는 것인가? 불편한 진실이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잘 살게 되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생산적으로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생산적인가는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근로의식보다는 그 나라의 경제제도와 정책에 달려 있다.
같은 언어와 문화 전통, 유전자를 물려받은 민족이지만, 경제체제가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성과 생활수준의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 남북한과 통일 전의 동서독이 그 증거다. 경제제도와 정책이 국민들을 부지런하게 일하도록 만드는 나라의 국민은 잘살게 될 것이고, 국민을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만드는 제도와 정책을 가진 나라의 국민들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세상에 가난한 사람 돕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근로자와 중소기업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복지를 강화하자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지극히 당연한 목표 달성에 무슨 좌우 노선이 있고 이념 차이가 있겠는가.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달성하는가다.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인간 지식에 기여한 지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다는 진리를 규명한 것이다. 성장과 복지, 효율과 형평 사이에 불가피한 상충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은 경제학 원론 교과서에도 나오는 과학적 진실이다.
아무리 복지도 좋고 소득 재분배도 좋지만, 이 같은 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부정하는 경제학자는 이단이고 사이비다.
복지, 사회안전망, 깨끗한 환경, 좋은 공교육제도, 사회기반시설, 심지어 유능하고 깨끗한 정부 등 이런 좋은 것을 얻는 데는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선진 복지국가들이 선진 복지국가인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이 이런 좋은 것을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잘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우리 경제가 부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더 부지런하고 생산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렇다면 온 국민을 보다 더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이끄는 지도자가 우리 국민을 진정으로 잘살게 만들 지도자다. 나태와 무책임, 갈라먹기와 기강해이를 부추기는 지도자는 우리의 경제를 침체시켜 우리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침체되면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서민과 근로계층이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 아니다. 우리 경제에는 아직도 절대 빈곤이 남아있고,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은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경제문제는 하고 싶은 것 다 못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못 가진다는 물질적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와 따뜻한 마음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힘든 선택과 어려운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익집단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강단이 있어야 한다. 토론을 누가 더 잘했는가보다는 어떤 후보가 이런 덕목을 가지고 있을지를 살펴야 하는 이유다.
김종석(홍익대교수·경제학)